"소성리의 저력은 부녀회원들의 근력이다"

황금돼지 아니, 황토돼지 해가 밝았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달마산을 올랐다. 사드배치를 결사반대 하면서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각자의 소원은 소원대로 염원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한 목소리로 "사드 뽑아야 평화돼지!"를 염원한다.

소성리 부녀회원은 새해 아침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떡국을 끓였다. 새해 첫날을 마을회관 부엌에서 시작한다. 다시국물을 끓이는 동안 성주 사드기지로 올라가서 목청이 터지라고 소리치고 내려왔다.

"장병을 위한답시고 초소 반입하지 말라, 새해가 밝았으니 이제 사드 가지고 이 땅을 떠나라"고 외쳤다. 한바탕 소리치고 나면 속에 쌓여있던 체증이 쑥 내려가는 기분이다.

어제의 해와 새해는 다를 것도 없이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사드철거 소성리 수요 집회를 한다.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님은 새해 첫 집회 때 순두부를 내기로 했다.

“두부가 간식으로 치면 가장 싸게 치여요. 콩값만 들잖아. 콩 열 말이면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 다 먹이고도 남는데, 우리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충분히 먹고도 남지.”

나는 두부 만드는 비법을 배울 겸 일을 거들기로 했다.

1월 2일 아침, 서둘러 집안일을 해놓고 소성리로 향했다. 지난 번 메주 만들 때 천천히 갔더니 임 회장님은 아침 8시 30분부터 장작을 지폈다고 했고, 나는 움찔했다. 서두른다고 서둘러도 9시에 겨우 도착했다. 임 회장님이 무쇠 가마솥 아궁이에다 장작을 지피고 있을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아침 '평화행동'을 하고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규란 엄니 집에 계신다.

순두부는 집회 시간에 맞춰서 만들어야 하니까 서두를 필요가 없는 거다. 여유 있게 규란 엄니 집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해 첫 날 성주 사드기지 앞에서 목소리 높이면서 새롭게 다짐을 했다는 두 어른의 이야기를 들었다. 사드를 뽑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지만, 포기는 배추를 세는 단위이지 우리가 할 말은 아니었다. 마을공동체가 무너질 수도 있는 위기를 느꼈고, 아직 힘이 있을 때, 사드와 군대를 내보내기 위해서 소성리 부녀회원들은 똘똘 뭉쳐야 한다는 결기를 느끼는 대화라고나 할까?

규란 엄니도 순두부 만드는 일을 거들어주기로 했다. 한동네에서 40년 이상을 이웃하며 친구로 지내온 임 회장님과 규란 엄니는 일하는 손발이 척척 맞아 떨어진다. 내가 거든다고 해도, 임 회장님 입장에선 미덥지 못할 테고, 나를 가르쳐야 하니 안심하고 시키기도 어려웠을 테니까 규란 엄니에게 도움을 청했나보다. 나는 두 어른의 어깨너머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보고배울 요량이었다. 나는 자칭 소성리 임순분 여사의 수제자가 되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말이다.

오전 11시부터 일은 시작되었다. 가마솥 하나에 물을 부어서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센 불에 팔팔 끓여야 한다기에 나는 열심히 장작을 아궁이에 쑤셔 넣었다. 아궁이 입구에 장작이 가득차서인지 불이 내 발을 덮칠 듯이 아궁이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활활 타올랐다. 연기로 세상이 뿌옇다. 눈이 매워서 아궁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해도 장작은 계속 넣어야 하는 줄 알고 지고 나르고 있으니까 든든한 지원군이 등장했다. 소성리에서 사과농사 짓는 태환 언니다. 원래부터 농사를 지은 사람은 아니었다. 도시에서 소성리로 들어와서 사과농사를 짓고 있는데 소성리 할매들 사이에는 장사로 불린다. 일을 겁내지 않고 워낙 잘 하니까 장사는 장사다. 순두부 한다는 소문을 듣고 도와주러 왔나보다.

사진 시야(施野)

“아궁이에 불이 앞으로 나와 있으면 안으로 밀어 넣어 줘야지” 하면서 부지깽이를 손에 쥔 태환 언니가 장작을 안으로 넣고 양쪽으로 퍼뜨리면서 불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정돈시켜주었다. 장작을 많이 넣는다고 센 불이 되는 게 아니란다.

조금 있으니 규란 엄니가 들어섰다.

임 회장님이 노란 콩을 물에 불려놓았다. 몇 번 씻었지만, 혹시나 모를, 돌이 들어있으면 안되니까 한 번 더 씻어냈다. 태환언니가 돌을 가려내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물을 넉넉히 부어서 콩이 푹 잠기게 하고는 손에 든 조리로 대야를 옆으로 휘휘 돌려 저으면 물살이 일면서 콩이 물위로 떠오를 때 낚아채듯이 콩을 조리에 담아서 건져내는 것이다. 나는 처음이라 헛손질만 했더니 보기 답답했던 태환언니가 몇 번의 시범을 보여줘서 원리를 깨쳤다. 요령을 익히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다.

두부 만든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는지 소성리의 평화지킴이도 하나 둘 모여들었다.

불린 콩을 체에 건져두고는 콩 가는 기계를 깨끗이 씻고 닦았다. 콩을 갈았다. 갈린 콩은 뽀얗고 뻑뻑하게 나왔다. 노랗고 둥근 콩 모양은 사라지고 콩죽이 되었다. 갈린 콩을 가마솥으로 옮겨 부었다.

규란 엄니는 '깔끔 대마왕'이다. 대야며, 바가지며 조금만 쓰고 나면 씻어낸다. 행주도 쉴 새 없이 빨고, 주변의 더러운 것을 쓸고 닦아낸다.

일하면서 보고 배워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정리정돈과 위생청결 정신인 거 같다.

가마솥에서 끓여낸 콩물을 압착기에 싸놓은 무명보자기 속으로 넣으면 임 회장님이 선장이 되어 양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오른쪽으로 돌려서 짜낸다. 이건 아무에게도 못 맡긴다. 손의 감각으로 돌려야 한단다. 바닥에 받쳐둔 커다란 대야에 두유가 쏟아져 내려온다. 무명보자기에는 비지가 쌓여간다. 두유는 다시 무쇠 가마솥으로 옮겨 끓인다. 미리 준비해 둔 간수를 무쇠 가마솥 바닥에 두고 장작을 지폈더니 간수가 녹아 물기가 되고 그 위로 두유를 쏟아 부어서 끓이기 시작한다.

한참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갈린 콩을 삶은 가마솥은 점점 헐거워지고, 두유를 삶는 가마솥에는 뽀얀 국물위로 뭉게구름 같은 순두부가 몽글몽글 끓고 있다. 아무 첨가물 섞은 것 없이 그야말로 콩만 사용해서 만든 순두부다. 순두부를 바가지로 퍼서 두부틀에 부었다. 물은 숭숭 구멍 난 사이로 빠져나가고 두부만 남게 된다. 두부틀 위로 강철판을 꽉 눌러주면 두부가 완성된다.

두부는 한판 만들고, 순두부는 200명은 족히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무명보자기 쌓여서 나온 비지의 양이 엄청 많았다.

시골은 콩비지를 생으로 먹지 않는다. 청국장 띄우듯이 따뜻한 온도에 띄운다는데, 안 띄우면 주로 가축 사료로 사용한다. 서울 사람은 생비지로 찌개를 끓여먹는다고 한다.

임회장님 집에서 띄운 비지로 끓인 찌개도 먹어보았다. 생비지를 집으로 가져와서 들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 김치 볶고, 돼지고기 볶다가 생비지와 다시국물을 넣어 비지찌개를 끓여서 맛보았다. 쿰쿰한 냄새도 나지 않고 맛은 담백했다.

사진 시야(施野)

두부와 순두부를 완성했다. 오후 2시 집회 시간에 맞춰서 소성리 마을회관으로 나갔다.

기해년 황토돼지 해 첫 사드철거 소성리 수요 집회가 시작되었다. 중앙으로 놓인 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 만큼 연기도 새어나왔다. 소성리 할매들과 김천 노곡리 할매들만 모여도 한 대오를 이룬다. 새해 맞아 첫 집회라고 '김천촛불' 님들이 많이 와주셨다. 서울서 민중가수로 활동하는 지민주 씨가 소성리를 찾아주었다. 전교조 경북지부의 신임지부장님도 소성리로 찾아주셨다.

남과 북이 만나서 악수를 하고, 평화정국이 도래했다고 세상은 떠들어댔지만, 사드는 뽑히지 않았다. 산나물이 그득한 자리를 다 차지하고 똬리를 틀었다. 주민들조차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있다. 사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군이 있고, 한국 장병이 사드와 미군의 경비를 서고 있다. 겨울 추위가 닥치자 장병의 인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초소를 더 보강하겠다고 알려왔다. 몇 차례 초소 반입을 막기 위해서 소성리의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이 긴장하며 살아야 했다. 시설을 확충할수록 사드를 빼내기 어려울 테니까, 살림 늘리지 말고, 있는 대로 살다가 사드 갖고 떠나라는 주민들의 강력한 메시지를 투쟁으로 전하는 것이다.

오전 한 때 순두부 만든다고 움직였더니 나는 집회하는 내내 지쳐서 꼼짝을 하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한참 후에 뒤를 돌아보니 순두부를 먹을 수 있도록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어느 새 임 회장님과 태환언니가 가마솥의 순두부를 냄비에 담아서 운반해왔다. 두부도 가져왔다. 아마 규란 엄니가 순두부위에 얹을 김치를 쫑쫑 썰어 놓았을 테고, 간장도 만들었을 거다. 접시 위에 두부를 가지런히 놓았다. 집회를 마치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소성리의 저력은 부녀회원들의 근력이다.

집회가 끝나자 나는 얼른 뒤로 나와서 국자를 들었다. 순두부를 국그릇에 퍼담아서 나눔 하였다. 따뜻하고 뽀얀 순두부에 쫑쫑 썬 김치를 넣고, 파가 송송 들어간 간장 한 숟가락 넣어서 양념을 한다. 구수하고 담백한 콩의 식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고단백 영양식이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아도 새해 첫날 여러분이 먹은 순두부는 나의 첫 작품이다.

콩 값만 들여서 만들 수 있는 가장 싼 간식이 아니다.

임 회장님과 규란 엄니와 태환언니 그리고 어설프지만 나와 평화지킴이들까지 거들어서 만들어냈으니 꽤나 비싼 인간 노동력이 투하되어 만든 간식이다. 거기다 임 회장님의 아들이 날라준 장작을 돈으로 환산하지 못할 뿐, 어마어마한 양의 재료가 들어갔다. 순두부 간식은 돈 10만 원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간식이 아니다. 가장 값비싼 인간 노동이 정성을 다해 만든 고급요리 인거다. 아무데서나 맛볼 수 없는 고급요리 말이다.

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순두부 한 그릇씩 먹고 “잘 먹었다”면서 웃는 얼굴로 사라져갈 때, 회관 부엌 싱크대에는 국그릇과 숟가락이 쌓였다. 따뜻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깔끔한 소성리 부녀회원들은 씻고 난 그릇을 마른 수건으로 다 닦아서 정리정돈까지 마치고도 할 일이 남아서 자리를 뜨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숟가락과 젓가락, 국자와 집게 등 쇠붙이로 된 식기구를 커다란 솥에 삶고서야 끝이 났다.

사드철거 소성리 집회에 오면 고급요리를 만날 수 있다.

고단백 영양가 만점의 소성리표 순두부 먹고서 우리는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사드 뽑아야 평화온다'는 신념으로 소성리를 지킨다.

소성리를 지키는 건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거니까.

사진 시야(施野)

관련기사

저작권자 © 뉴스풀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