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사드기지가 위치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은 아직 투쟁 중이다.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성리 마을 앞으로 미군은 통행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해 기름 한 방울 운반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장비도 이동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그 무엇도 소성리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 소성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사람이 살아온 마을이며 평화 종교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가 달마산 꼭대기에 배치된 이상 우리는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없다. 소성리 주민은 길어지는 투쟁으로 지쳐간다. 그러나 살기 위한 투쟁이다. 삶은 치열하다. ‘사드가야 평화돼지해’를 맞아서, 소성리를 지키는 사람들의 투쟁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농사 작심

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먹었다. 텃밭 가꾸기가 아니라 내 생업으로, 내 생계를 유지할 방도로 농사를 짓기로 했다. 

날마다 소성리로 간다. 불법하게 임시배치 된 사드기지 앞에서 아침 평화 행동을 했다. 겨우내 사드기지로 오르는 길에 한눈팔지 않고 사드 뽑는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고 외쳤다. 다짐을 지키는 방법, 생계를 유지할 방법, 글 쓰면서 먹고 살 방법은 묘연했다. 

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먹고 나니 한시가 바빠졌다. 이미 봄은 다가왔고, 농부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해 땅을 고르고 퇴비를 뿌리고 있었다. 농사를 짓자고 마음먹고 나서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님 집이다. 순분 씨는 내 얘기를 듣더니 바닥을 치고 웃었다. 

그리고 한마디, “그래 한번 해보자” 였다. 

소성리에서 달마산으로 올라가는 언덕 위로 밭 500평이 놀고 있다. 순분 씨가 농사지었던 밭이다. 내 생에 첫 농사 자리가 되었다. 순분 씨의 농사 수업이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기로 마음먹고 나서 고령장날에 구경 갔다. 햇볕을 가려주는 남방 두 벌 1만 원, 민소매 티셔츠 2장도 1만 원을 주고 샀다. 최신형 모자도 1만 원짜리 두 개를 샀다. 그리고 밭에서 신을 신식고무신까지 쇼핑을 즐겼다. 농사일 할 때 입을 작업복은 순분 씨네 툇마루 한쪽에 두었다.   

날마다 아침 사드기지 앞 평화행동을 하고 나면 순분 씨네로 출근하기로 했다. 밭 500평 중 100평 정도는 첫 작물로 감자를 심기로 했다. 김천의 종묘상에서 씨감자 20kg 두 박스를 구입했다. 밭에 씌울 검은 비닐도 샀다. 퇴비는 100포 준비했다. 사드 반대하는 주민의 배려로 값싸고 질 좋은 퇴비를 살 수 있었다. 

 

 

퇴비 100포가 배달 오는 날, 농사는 시작되었다 

나는 배달차를 안내해 밭으로 갔다. 순분 씨는 호미 한 자루 들고 밭으로 올라왔다. 퇴비를 쌓아놓고 차를 보내고 난 후에 기다랗고 넓은 밭 안으로 들어서니까 순분 씨는 미처 벗겨내지 못한 비닐을 벗기고 있었다. 다행히 밭 전체는 아니었다. 

나는 퇴비를 빨리 뿌릴 욕심으로 퇴비포대를 어깨에 둘러메거나 배에 꽉 붙여 안고 운반했다. 퇴비 한 포대 무대가 20kg이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몇 개 운반하지도 못하고 순분 씨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비닐을 벗겨내는 일을 거들었다. 퇴비를 뿌리려고 해도 밭이 정돈되지 않으면 어차피 할 수 없었던 거다. 500평 넓고 기다란 밭 절반 정도 비닐을 벗겨내야 했다. 언제 다 벗기게 될지 알 수 없었다. 순분 씨는 점심때까지 하면 끝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차분히 앉아서 먼지를 다 뒤집어 써가면서 벗겨내는 방법밖에 도리가 없었다. 

소성리 마을회관에 밥 먹으러 오라고 규란 씨가 전화했다. 먼지를 다 뒤집어쓰고 회관으로 가기도 어려웠지만, 밥맛도 없었다. 물도 한 병 없어 목이 말랐지만, 묵묵히 꼬질꼬질하게 찢어진 비닐을 벗겨냈다.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감자 심을 시기가 늦은 터라 퇴비를 뿌리고 비닐을 씌우는 게 급하긴 했지만, 초보 농사꾼인 나로선 주변에 민폐 끼치지 않고 내 힘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남편이 퇴근하고 소성리로 달려왔다. 퇴비 몇 개라도 뿌려놓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못다 한 것은 다음날 내가 하면 되겠거니 했다. 트랙터로 로터리 치는 거며, 관리기로 밭 두둑 쌓는 일은 소성리 재영 아저씨에게 부탁해놓았다. 분명 금요일 오전까지 퇴비를 뿌려놓을 테니 점심 잡수시고 오후에 와서 로터리를 쳐달라고 했었다. 

 

밭 장만하는 날

금요일 아침에 순분 씨 집으로 출근해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작업복을 갖춰 입었다. 콧노래를 부르면서 밭으로 설렁설렁 걸어갔다. 내 앞으로 김 감독이 걸어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했다. 앞서가는 김 감독은 뭐가 그리도 바쁜지 설 생각을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간다. 오르막길을 씩씩거리면서 걸어 올라가니 나의 밭에 트랙터가 들어와 있고, 짱돌과 김 감독이 퇴비를 나르고 있는 거다. 

아침부터 재영 아저씨가 트랙터를 몰고 내 밭으로 올라왔다. 퇴비가 다 뿌려지지 않은 밭은 바로 로터리를 칠 수 없었을 테다. 농사 이웃인 짱돌과 김 감독에게 퇴비를 뿌리라고 한 모양이다. 이웃사촌 간에 서로 도우면서 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긴 하지만 정작 밭 주인이 된 내게 아무 말도 없이 일이 척척 진행되고 있어 당황스러웠다. 나도 정신을 수습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20kg짜리 퇴비포대를 어깨에 짊어지고 밭으로 운반해댔다. 

잡풀이 말라비틀어져 쓰러져 있던 밭은 트랙터가 움직일 때마다 속에서 밖으로, 밖에서 속으로 흙을 뒤집고 섞으면서 고르고 또 골라서 부드러워졌다. 

로터리를 다 치고 나서 관리기가 등장했다. 딴딴하게 다져졌던 땅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밟을 때마다 폭폭 파이는 감촉이 놀라웠다. 감자가 땅속에서 헤엄치면서 쑥쑥 자랄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얻은 밭 500평이 아주 촉촉하고 보드라운 흙이란 걸 알게 되자 나의 첫 농사가 제대로 잘 될 거란 예감이 들었다. 

밭이 척척 만들어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분 씨가 태환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환 씨는 목욕탕에 있다고 했고, 돌아오는 길에 부탁한 약을 사다주기로 했다. 밭두둑을 다 만들고 나서 태환 씨가 도착했다. 순분 씨는 보건지킴이 교육을 받으러 가야 했다. 다녀와서 밭에 비닐을 씌우자는 말을 남겼다. 

사람을 기다릴 것도 없이 태환 씨가 비닐을 씌우자면서 앞장섰다. 씨감자를 심을 자리와 고추 모종을 심을 자리에 비닐을 씌우는 일도 고된 노동이었다. 밭두둑이 만들어지면 쇠스랑으로 풀씨 찌꺼기를 쓸어냈다. 감자밭에는 검은 비닐에 철봉을 넣고 끌어서 밀어내면 삽으로 양쪽 흙을 퍼서 덮었다.

재영 아저씨가 어느새 집에서 안 쓰는 두꺼운 초록 비닐을 가져와서 밭두둑 두 개를 한 번에 덮을 수 있도록 했다. 양쪽 끝에 두 사람이 비닐을 잡고 있으면 한 사람이 삽으로 흙을 퍼서 가운데 지점에 던져 넣으면 균형을 잡게 한다. 그러고 나면 양쪽 비닐을 잡고 있던 사람이 흙을 퍼서 고정한다. 쉬울 거 같지만 길이 50미터는 족히 넘을 거 같은 기다란 밭두둑을 따라 비닐을 씌우는 일이 쉽지 않았다. 

삭신이 쑤시고 아파도 내 밭에서 일해 주는 고마운 이들 앞에서 얼굴을 찌푸릴 수도 없고, 내 밭이라고 이제 그만하자고 할 수도 없었다. 다들 오늘 하는 김에 다 해치우자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었다.

비닐을 다 씌우고 나니 밭은 밭같이 잘생겨 보였다. 밭 장만한다는 소문이 났는지 동네 할매들이 구경나왔다. 보건 교육을 다녀온 순분 씨와 규란 씨가 밭으로 오더니 씨감자를 심자고 한다. 몸은 고달프지만 손댔을 때 해치우자는 농사 이웃의 아우성에 못 이겨서 씨감자 두 박스를 가져왔다. 

감자는 씨눈이 상하지 않도록 큼직하게 두 조각 또는 세 조각을 내고, 나와 순분 씨가 모종삽을 들고 심기 시작했다. 감자 씨는 비닐이 덮인 밭 위로 모종삽 길이만 한 간격으로 지그재그 심었다. 모종삽으로 비닐 덮은 밭을 한번, 두 번, 세 번 사각 모양이 나게 찢어서 흙을 깊게 파서 씨감자를 쏙 넣고는 흙을 덮었다. 깊숙이 심어주어야 한다. 

역시 순분 씨는 손놀림도 가볍고 몸도 가벼워서 순식간에 씨감자를 심어나갔다. 내가 한 두둑을 심을 동안 순분 씨는 두둑을 반 이상 더 심은 듯이 보였다.   

하루 만에 밭을 만들고 씨감자를 심었다. 진짜로 농사를 짓게 된 거다. 돌이킬 수 없도록 말이다.  

농사 이웃이 된 짱돌과 김 감독은 내 밭 위로 참깨를 심고, 콩을 심을 예정이다. 이웃 간에 품앗이를 제대로 한 셈이다. 다음번에는 내가 그들의 밭에서 품앗이를 해줘야 한다. 무엇보다 속도전으로 밀어붙인 건 태환 씨다. 소성리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다. 일을 무서워하지 않는 여장부다. 나의 농사 선생님은 소성리부녀회장 순분 씨다. 초보 농사꾼이 된 나로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만 할 생각이다. 

씨감자를 심었고, 네 골 정도 고추를 심을 예정이다. 나머지 빈자리는 참깨를 심자고 했었다. 고추는 탄저병의 위험이 있기도 하지만, 한여름에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한다. 고추 모종은 따뜻한 4월 중순 너머 심어야 하고, 참깨 씨는 5월 초에 뿌린다고 하니, 그동안 밭에서 할 일은 없다. 

아침저녁으로 날은 매섭게 바람이 불고 추웠다. 씨감자는 싹을 틔울 생각을 하지 않더니, 드디어 삐죽이 얼굴을 내밀고 올라오는 놈이 보였다. 

 

내 생에 농사는 소성리에서 시작되었다 

참깨를 심기로 했던 마음은 변죽만 울렸다. 여러 가지 작물을 돌볼 자신이 없기도 하고,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더 커진 탓도 있어 나머지 빈자리는 고추 모종을 심기로 했다. 탄저병의 위험이 있긴 하지만, 고추 농사로 밀어볼 계획이다. 무엇보다 순분 씨가 고추 농사는 잘 지을 자신 있다고 한 말을 믿고 따라볼 생각이다. 그렇다고 탄저병을 잡아줄 수 없다는 것도 안다. 

한참 파종해야 할 농번기 4월 말 5월 초에 불법하게 임시배치된 사드 기지에 장병 숙소 리모델링 공사를 할 예정이란다. 마음 편히 농사지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시작한 농사를 망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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