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최후 진술
[칼럼] 최후 진술
  • 지민
  • 승인 2019.04.29 1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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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측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했다. 

“재판부는 성소수자, 성적 지향, 성 정체성 이런 말 들어보셨습니까.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말입니다. 저는 진짜 성적 지향이 무슨 학교 성적인 줄 알았습니다.”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해도 된다고, 차별해야 한다고 말한 거, 그거 제가 한 말입니다. (웃음) 그럼 안 됩니까. 남녀를 기본으로 하는 대한민국에서 성 정체성이 서른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럼 배우자가 서른 명이 넘는 건가요. 이게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장장 8개월간 이어진 소송의 마지막 날이었다. 상대는 한동대 교수 둘과 목사 한 명. 이들이 저지른 명예훼손 행위를 다투는 재판이다. 작년 초 나는 한동대에서 무기정학을 당했다. 페미니즘 강연을 주최했다는 이유와 성소수자라는 이유였다. 징계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몇몇 교수들은 나를 대놓고 비난했다. 수백 명의 학생을 앞에 두고 나를 “곰팡이”와 “암세포”에 비유하거나, 내 사적 관계를 악의적으로 “문란하게” 묘사하고, 이를 근거로 공격했다. 한마디로 마녀사냥이었다. 그들은 징계를 정당화할 수단이자 보수 교계의 결집 수단으로 내가 성소수자임을 이용했다.

파급력은 대단했다. 교회를 중심으로 나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비방이 전국적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메시지는 각종 블로그와 채팅방, 카페, SNS를 타고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막을 방법이 없었다. 변호인단과 상의 끝에 소송을 결심했다. 더 이상의 유언비어 확산을 막고 학교의 공세적인 태도에 제어를 걸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효과는 있었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줄었고, 학교도 섣불리 나를 비난하지 못했다(겉으로는).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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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이 진행될수록 새로운 결심이 섰다. 판례를 남겨야한다. ‘차별금지법’이 보수 교계의 반대에 부딪혀 차일피일 미뤄지는 몇 년 동안, 소수자라는 이유로 차별에 노출되어도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당장의 안전망이 없는 현실이다. 한동대뿐만 아니라 장신대, 숭실대에서도 성소수자 채용을 제한하거나 학생을 징계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악의적인 아웃팅에 노출되어도 마땅히 구제받을 수단을 찾기도 어렵다. 이 재판의 결과가 적어도 하나의 선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차별할 수 있고 차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악의적인 아웃팅, 혐오발언은 민주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다는 최저의 기준이 되는 선례로.

재판 당일, 교계의 이목이 집중된 만큼 법정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단연 상대측 교인이 많았고, 그 수만큼 방청석도 소란스러웠다. 상대측 변호사의 말이 끝날 때는 박수가 나왔고, 내가 입을 열 때는 야유가 나왔다. 유독 큰 소리로 내 말을 방해하던 한 사람은 결국 판사에 의해 퇴장조치를 당했다. 재판이 끝나갈 무렵, 나에게 마지막 10분이 주어졌다. 방청석에 있던 이들은 역시 귀를 닫고 한숨을 뱉었다. 발언 시간 내내 혀를 차는 쯧쯧 소리가 이어졌다. 그날 그 공간에서 내 말은 ‘없는 말’이었다. 이 지면을 빌어 최후 진술을 공유하고 싶다. 내 존재처럼, ‘있는 말’로 기록되기 위해서. 

이하, 최후 진술.

 

변론 종결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저에게 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오랜 시간 고민했습니다. 작년 8월에 소송을 시작해 장장 8개월간 이어진 양측의 주장을 마지막까지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피고 측이 주장한 사실관계와 법리 곳곳에 숨어있는 왜곡과 모순에 대해서도 지금껏 충분히 반박했으며, 재판부에서도 현명하게 가려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지막으로 지금껏 나온 이야기와는 조금 다른, 그러나 본 사건의 본질에 가까운 세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관계와 경위, 그리고 맥락입니다. 

첫 번째는 소송 당사자의 관계입니다. 다시 말해, 이 자리의 원고와 피고가 어떤 관계인지 주목해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법을 잘 모르지만, 본 사건과 같은 재판을 사인과 사인 간의 법률관계를 다루는 민사 사건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인과 사인 간에는 법률상 대등한 지위를 전제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이 정말 그러한지 의문이 듭니다.

본 사건의 원고는 학생 개인이고, 피고는 교수와 목사, 그리고 학교 기관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학생처장이란 지위를 가진 교수와 교목실장이란 지위를 가진 목사, 한때 교무처장 입학처장 등 주요 보직을 역임한 교수, 그리고 교육기관인 한동대학교가 본 사건의 피고입니다. 더 나아가 본 사건의 배경이 된 징계 사건에 직접적 당사자이자 당시 징계위원회 위원장과 위원이었던 책임자들이 본 사건의 피고입니다.

즉, 원고와 피고 사이에는 명백한 권력관계가 존재하고, 본 사건에서 다루는 명예훼손 행위 또한 그러한 권력관계 위에서 이뤄졌다는 것입니다. 실제 피고들은 교수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자원과 권력을 이용해 명예훼손 행위를 하였습니다. 학교 인트라넷의 공지를 이용해, 전 교수와 교직원 및 학교기관에 발송이 가능한 교수메일을 통해, 그리고 수백 명의 학생들을 모아놓고 강단과 교단 위에서, 피고들은 학생 개인에 대해 악의적인 목적으로 비방과 모욕, 명예훼손 행위를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 사건의 배경이 된 징계 사건에서도 제가 학생처장의 위법하고 위헌적이며 강압적인 행위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불손한 언행’이라는 징계 사유가 추가됐습니다. 이는 곧 교수의 잘못된 행위를 비판했다는 것만으로도 저의 학습권이 언제든 박탈될 수 있는 권력관계의 존재를 방증합니다.

또한, 이러한 권력관계와 피고들의 지위로 인해 그 행위의 파급력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타 사인 간에 통상 발생하는 명예훼손 행위와 달리, 본 사건에서 피고들의 행위는 교수 및 목사로서의 지위로 인해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공공성과 신뢰성을 일정부분 담보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피고의 지위가 피고의 발언에 힘을 실어주어 피고의 악의적 명예훼손 행위를 사실 그대로 믿는 학생과 시민들이 상당 다수 발생하였으며, 그로 인해 저에 대한 명예훼손이 확산되는 등의 문제가 2차 3차로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피고들의 행위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저에 대한 명예훼손 메시지가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재생산되어 2차 피해가 발생하였고, 현재 이와 관련하여 형사 고소가 진행 중입니다.

두 번째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피고들과 달리 저는 20대의 일개 대학생에 불과합니다. 그런 제가 이렇게 교수들과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추후 저의 사회생활과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고, 소송으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 등 여러 무시 못 할 사정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소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던 경위에 대해 말씀드리고 참작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간 저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피고들의 행위를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힘이 없었고, 그럴 자원이 없었고,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징계가 있기 전부터 징계절차가 진행되는 중에도, 그리고 징계가 이뤄진 이후에도 저는 지속적으로 피고들의 행위에 대해 중단을 요청하고, 구제수단을 강구하며, 보호조치를 요구했으나 어느 것도 이뤄지거나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구체적으로, 징계가 진행될 때 저는 학생지도위원회 측에 피고의 행위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행위이자 명예훼손 행위임을 알렸으나 전혀 조치를 취한 바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18년 3월 14일 저는 피고들의 행위에 대한 중단 조치와 저에 대한 보호조치를 한동대학교 학생지원팀과 학생처에 요구했으나 전혀 수용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동대학교 학생지원팀 팀장은 이메일 수신 후 제게 전화를 걸어 조치가 어렵다는 답변을 보내오는 등 당시 학교는 저의 중단 및 보호 요구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며 그저 방관하고 심지어는 동조했습니다. 이에 추가적인 구제수단의 필요를 절감한 저는 교육부에도 민원을 제기하고 조치를 요청하였으나 이 또한 지금까지 이뤄진 것이 전무합니다.

정리하면, 저는 그간 소송이라는 사법적 수단 이전에, 제가 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모든 구제 수단을 강구하고 활용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음에도 구제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사정 끝에 본 재판장까지 오게 된 경위를 참작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사건을 둘러싼 맥락입니다. 즉, 피고들의 발언이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이뤄진 것인지에 관한 것입니다. 피고 측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 당시 한동대는 자신들의 교육이념 혹은 설립정신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저를 징계하였고, 관련 사실을 본인들의 입맛에 맞도록 변형하여 자신들의 확고한 종교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한 선전 도구로 활용하였습니다. 

피고 측이 스스로 시인한 것처럼, 피고들은 자의적으로 규정한 공공의 이익이라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학생을 징계하고 그 사실을 왜곡 전파하며 비방하는 것을 교육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공공에 저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저를 교수대 위에 올려놓고 교육 도구로 삼아 저건 잘못된 행위야, 저렇게 살면 안 돼, 그러면 너희도 징계받을 거야, 라는 메시지를 공공에 전파한 것입니다. 본보기, 일벌백계, 마녀사냥 등 이러한 상황을 가리키는 말은 우리에게 익숙하리만큼 많습니다. 다시 말해, 피고들은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저에 대한 발언을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저의 사생활과 저의 행위, 나아가 저의 삶과 존재가 잘못되었다는 본인의 생각을 공공에 전파하여 낙인찍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본인들의 내심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들, 정황이 그러하고 결과가 그러합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있지도 않던 공황장애가 생겼고, 고도 위험군의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호흡이 가빠지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어지러움에 시달리며 죽음을 생각해야 했습니다. 피고들의 악의적인 메시지가 2차 3차로 퍼지면서 가족들과 친지들에게도 왜곡된 내용이 전달됐고, 그로 인해 집안에는 변명과 눈물의 소리가 마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징계절차 때문에 포항에 계속 머무를 때는 학교 주변은커녕 학교 버스가 다니는 길조차 피해 다녀야만 했습니다. 당시 진행 중이던 졸업 프로젝트 모임에 나가서도 이름을 밝히기 두려웠습니다. 교수실에서, 강단 위에서, 교단 위에서, 키보드 위에서 아무렇지 않게 던진 교수들의 한두 마디가 사람 한 명을 이렇게 망칠 수 있구나 하는 사실을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이것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아웃팅과 차별이 가지는 의미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가 지금 말씀드린 건 그 차별의 100분의 1도 채 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본 사건에서 피고들의 명예훼손 행위는 명백히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해진 점, 그리고 이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참작해주시기 바랍니다. 피고들의 행위가 명예훼손 행위라는 것에 믿어 의심치 않지만, 혹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피고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성소수자를 차별하고 고립시키고 심지어는 자살에 이르도록 만드는 행위라는 점, 아무리 포장된 언어로 본인들의 행위를 정당화할지라도 교수와 목사들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학생 개인을 마녀사냥하고 학교에서 몰아냈다는 점, 그리고 민주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이 모든 것을 방관하고 동조했다는 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여행자>에서 활동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