걔 학교 잘렸대. 폴리아모리인가 뭔가 그거 때문이라던데? 나도 잘 모르는데 여럿이 사귀는 거래. 애인이 자기 말고 다른 애인을 한 명 더 사귀고, 셋이 같이 산다나. 말이 되냐? 그게 그룹섹스지 뭐야. 애인 둘 끼고 있는 여자도 웃긴데 그걸 용납하는 새낀 무슨 생각이냐 대체. 애인이 다른 새끼랑 자면 질투도 안 나나. 우리 교회 목사님은 난교라고 하던데 딱 맞는 말 아니냐. 사실 그냥 바람이나 난교라고 하기 부끄러우니까 괜한 이름 붙여서 면죄부 받으려는 거지. 폴리아모리는 무슨. 아무리 포장해봤자 똥이 꽃으로 변하냐. 더러워.

그 새끼, 처음엔 페미니즘 강연 주최해서 징계 받은 걸로 알려졌잖아. 그것도 맞는 말인데 폴리아모리가 진짜 문제더라고. 우리 교목실장님이 말씀하시더라. 폴리아모리 때문에 징계한 거라고. 하긴 그런 변태 새끼가 학교에 있으면 너무 위험하지 않겠냐. 도덕이고 윤리고 나발이고 다 갖다 버리고 결국 지 꼴리는 대로 살겠다는 거잖아. 방종을 뭐 대단히 선구자적 정신인 양 이름 붙이고 있어. 그래놓고 그 새끼 교육부에 민원도 넣었다며? 그때 학교가 낸 답변서에도 쓰여 있더라. 폴리아모리 관계 정리하지 않으면 학교 못 돌아온다고. 빵에 곰팡이가 피면 곰팡이 핀 부분을 잘라내는 게 맞지. 

그러게 왜 기독교 학교에 와서 저 짓거리를 하는지 몰라. 차라리 이슬람 동아리를 만들어달라지. 안 그래? 그런 놈들이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게 쪽팔려. 주변 애들 물들일까 봐 무섭다야. 본보기로 싹 잘라내야 돼. 안 보이는 데서 지들끼리 난교를 하든 말든 왜 그걸 사람들이 알게 해? 학생처장님이 교수 메일로 걔 폴리아모리인 거 알렸다고, 그걸 명예훼손이라느니 아웃팅이라느니 인권침해라느니 하던데. 솔직히 지가 그렇게 안 살았으면 되는 거 아니야? 

듣고 보니까 심각하긴 하다. 나는 원래 그 선배랑 알고 지내던 사이였어. 평소 학교에 불만 많았잖아. 교수님이 장난으로 한 말을 여성 혐오니 뭐니 떠들면서 학교 망신이나 주고. 자기는 엄청 문란하게 살면서 누가 누굴 비판해. 안타깝다. 근데 사실 한편 좀 불쌍하기도 해. 뭔가 어릴 때 큰 상처가 있나? 취약한 사람인가 싶어서 하나님 만났으면 좋겠더라. 그래서 나 요즘 기도하잖아. 선배가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너네도 같이 기도하자. 우리 모두 죄인이잖아.

근데 요즘 페미니즘이나 동성애나 폴리아모리나 그런 애들 왜 저렇게 난리냐. 인권이다, 혐오다, 뭐다, 하는데 다 하나님 섭리에 어긋나잖아. 문란하고, 더럽고, 에이즈 걸리고, 애들 교육 망치고. 얼마 전에 인천에서도 퀴어 축제 열린다 해서 교회들 난리 났었잖아. 우리 교회 사람들도 다 가서 겨우 막았어. 근데 목사님 몇 분이 경찰에 끌려갔대. 진짜 이게 무슨 나라냐. 걔네가 소수자라고? 무슨 소수자가 그렇게 인원이 많아. 툭하면 소수자래. 진짜 차별은 지들이 우리한테 하는 거잖아.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하면 혐오라고 하고. 진짜 문제야. 그 새끼도 인권위에 진정하고 교수님들 고소까지 했다며. 참나. 지가 잘못해놓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여튼 세상법이 뭐라고 하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법도를 따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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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한다. 내 더러운 관계와 불결한 사상을 바꿔 달라는 간절한 바람으로.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그들의 기도는 이뤄졌다. 2018년 2월, 나는 7년간 몸담은 학교에서 무기정학을 당했다. 졸업을 일 년도 안 남긴 시점이었다. 이유와 과정은 무척 복잡하고 지난하지만, 간단하게 줄이면 이렇다. 기독교 대학인 한동대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열었고, 비독점 다자연애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는다는 이유로 나는 징계를 받았다.

사건이 있기 전에도 한동대는 보수 기독교의 행동대장 격이었다. 퀴어문화축제 한편에서 반동성애 부스를 만들었고, EBS <까칠남녀>나 CBS <세바시> 사건 때도 ‘동성애 OUT’을 외치며 등장했다. “성 평등 조장하는” 국가 인권정책 기본계획(NAP)을 폐기하라는 국회 앞 1인 시위에도 한동대 교수가 나타났다. 페미니즘이라면 치를 떨었고, 동성애라면 못 죽여 안달 난 정죄의 개미지옥이었다. 

그런 곳에서 페미니즘 강연을 도운 폴리아모리스트라니. 다들 못 볼 걸 본 것처럼 황급히 나를 치워버렸다. 학생처는 신속히 징계절차를 진행했고, 교목실장은 징계가 폴리아모리 때문이라 설파했으며, 총장은 본보기라며 징계를 결재했다. 징계통지서에는 쏙 빠졌지만 한동대가 교육부에 내민 공식 입장은 이랬다. 

“학교의 교육이념에 용납될 수 없는 다자성애(폴리아모리)를 정리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인다면 학생지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기간을 종료하고 학교에 복귀할 수도 있음.”

한동대에는 ‘아름다운 가정과 결혼을 꿈꾸는 청년 모임’이 있다. 자칭 학회인 그곳은 확고한 성별이분법 아래 비장애인 이성애자 중심의 정상 연애와 정상 가족을 찬양한다. 지난여름엔 ‘동성애 바로 알기 특강’이란 제목으로 일명 탈동성애자가 나와 ‘간증’했고,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독재법”이라 부르는 변호사가 나와 강연했다. “동성애는 에이즈”를 부르짖고 혐오를 표현의 자유로 탈바꿈하는 그 현장에는 나와 성 소수자 친구들이 있었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강연을 듣던 칠백여 명 사이에서 우리는 없어져야 할 존재였다.

그들이 정해놓은 ‘정상’의 이름표를 부여받지 못한 존재는 가차 없이 잘려나간다. 성소수자, 여성, 이주민, 장애인, 유색인, 특정 종교인… 조금이라도 중심에서 빗겨나간 존재들은 자신이 있던 공간에서 내쫓기고 목소리를 빼앗긴다. 징계 이후 이 사건과 관련한 대자보는 모두 학교에 의해 떼어졌고, 공론화를 위한 간담회는 교내 전기 사용 금지를 명목으로 마이크를 빼앗겼다. 이러한 풍토에서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쫓겨날 수 있는 임시적인 존재가 된다.

총장은 2018년 지진 피해 건물 복구식에서 말했다. “이 사건을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전략은 통했다. 남은 사람들은 점차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고 그나마 목소리 내는 사람들은 또 다른 징계 위협에 처했다. 궁금하다. 자신마저 부정하는, 허접하고 빈약한 ‘정상’ 딱지를 저토록 수호하려는 이유는 뭘까. 혐오와 차별을 정의와 신앙이라 믿는 저 진심은 대체 뭘까. ‘정상’에 부합한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학생지도위원회의 모 교수는 지도위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폴리아모리고 혼전 동거고 낙태고 뭐 이런 애들 다 잘라내야 돼!” 나를 뚫고 지나간 혐오의 화살은 이제 어디를 향할까. 나를 위해 기도한다던, 나를 더럽다고 말하던, 나를 잘라내야 한다던, 너희일지도 모른다.

 

※ 2년여 투쟁 끝에 2020년 1월 30일,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은 ‘징계는 무효’라는 승소 판결로 하나의 마침표를 찍었지만, 단지 재판 승소가 끝이 될 수는 없다. 한 개인만의 일도, 한동대만의 일도, 특정 종교만의 일도, 대학이란 특정 공간만의 일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동대를 비롯한 기독교, 나아가 한국 사회에는 여전히 혐오와 차별이 만연하고, 이들은 서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그저 흘러가고 사라지며 없었던 일이 되지 않도록 한동대 부당징계 사건을 구석구석 기록한다.
 

글 _ 지민
한동대 부당징계 당사자. 비혼생활공동체에서 폴리아모리 관계를 맺고 있으며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갓길: 같이 걷는 길> 등에서 활동합니다. 염치 아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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