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래시를 넘어서기 위한 성찰과 모색의 시간

 

1_ 역사는 후퇴하는가에 대한 질문

 

2016년 문화예술계 성추문 사건으로부터 사회적으로 급물살을 타고 퍼진 한국 사회 내 미투 운동은 2018년 검찰청 내부 성추문 폭로와 유력 지자체장에 대한 고발까지 한국 사회를 뒤흔들어놓았다. 변화의 강물은 멈추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미투 운동의 물결이 공세 종말점에 도달하는 순간, 곧바로 반격의 백래시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봄은 너무나 미약하게 느껴지고 되돌아온 삭풍이 모든 것을 무로 돌려놓는 것 아닌가 하는 공포감이 퍼졌다.

미투 운동에 동참하거나 지지를 보냈던 적지 않은 이들이 급변한 상황에 좌절하거나 회의감에 빠져드는 장면을 근래 들어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하지만 수백수천 년을 쌓아온 남성 위주 가부장제 사회 내 기득권과 권력관계가 일순간에 바뀔 리 없다. 조금씩, 느려 터져 보일지언정 근본적인 사회 변화를 향한 막대 구부리기는 계속 진행 중이다. 개인은 그런 변화가 수면 위로 드러나 확립될 무렵에야 알아차리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바퀴는 탄력을 받은 만큼 굴러가게 마련이다.

 

"애프터 미투" 영화 스틸 이미지
<애프터 미투> 스틸 이미지

민감한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고, 그 바람을 확산하거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은 시대와 공명하는 문화예술인들에게 역사상 책무처럼 늘 따라붙어왔다. 한국 사회 미투 운동에서 주요한 추동력으로 작용해온 당대 문화예술계 역시 의외는 아니다. 대중이 쉽게 지치거나 실망하더라도 예민한 감수성으로 시대 변화를 선도하거나, 모순적으로 가장 폐쇄되고 보수적인 문화예술계 내부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각개전투를 치열하게 거친 이들 몇 명이 지금의 얼핏 수 세기로 보이는 시절에 적절한 개입을 도모했다. 이번에 소개할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영화 <애프터 미투>다.

 

2_ 조명되어야 할 주제들을 각자의 개성으로 풀어내다

 

<애프터 미투>는 작금의 지형이 놓인 난맥상을 인식하고 바로 지금 필요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는 고민의 귀결로 탄생했다. 철저하게 ‘정세적’으로 기획된 작품은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공개되었다.(2021년 8월 말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된 후 영화제를 순회 중이다)

작품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영어 단어 ‘And’와 ‘End’의 의미가 하늘과 땅 차이듯, 본 작품의 ‘After’ 또한 ‘몰락 이후’냐 or ‘새로운 희망’이냐 180도로 다른 해석이 (영화를 보기 전 각자의 인식에 따라) 가능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영화를 본 소감은 명백하게 후자다.

여성주의에 기반을 둔 작업을 수행하며 개별적 작업을 넘어 공동의 창작과 사회적 참여에 목소리를 내왔던 네 명의 감독이 이 프로젝트에 함께 했다. 두 명은 70년대 생, 두 명은 90년대 생 여성 감독이고, 제작을 맡은 프로듀서들 또한 감독들과 오래 교류하며 같이 활동해온 이들이다.

변화무쌍한 속도감의 한국 사회에서 15~20년의 나이 차가 있는 공동감독들은 사실상 다른 세대에 속한다. 윗세대 감독들은 상당 기간 여성주의 운동의 흥망성쇠를 관찰하고 조망하는 시간을 긴 호흡으로 확보해온 이들이다. 반면에 후속세대 감독들은 2010년대 중후반 새로운 흐름과 자전적 체험을 교차시켜가며 자신만의 시야를 만들어왔던 이들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경험을 가진 이들이 골고루 섞여 장기간의 논의와 협동을 통해 <애프터 미투>가 꼭 다뤄야 할 지점들을 몫을 나눠 작업했다.

4편의 독립된 단편 조합으로 구성되지만 옴니버스 영화의 시작과 끝은 파일럿 역할을 맡은 짧은 도입부와 마무리로 동시에 출발하고 한데 모여 정리된다. 처음 화면이 시작되면 1991년 故 김학순 활동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 영상과 2003년부터 시작된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영상이 빠르게 지나간다. 이 오프닝은 본 작품의 정체성과 운동적 연속성을 상징적으로 선언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4편의 단편 다큐멘터리가 차례로 전개된다.

 

"애프터 미투" 영화 스틸 이미지
<애프터 미투> 스틸 이미지

#1. <여고괴담>, 학교라는 감옥을 넘어, 스쿨 미투를 외치다

첫 번째 단편은 박소현 감독의 <여고괴담>이다. 감독은 <야근 대신 뜨개질>, <구르는 돌처럼>, <사막을 건너 호수를 지나> 등의 전작들에서 여성노동자와 예술가, 대안학교 청소년들의 다양한 삶을 기록해온 베테랑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여고괴담>의 무대는 스쿨 미투 운동의 아이콘, 서울 용화여고다.

용화여고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속적으로 학생 인권 문제가 제기되어온 ‘전통’의 학교다. 주로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된 2018년 투쟁을 재구성한 내용이지만 그 이전 역사에 해당되는 2002년 퇴학 사건 등도 언급되고 있다. 2018년의 폭발은 그 이전 선배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감수하며 거듭 싸워왔던 기억의 응축이 분출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실제 2018년 성추행 관련 문제 제기도 졸업생들이 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재학생들이 호응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여고괴담>의 화면은 실제 당시 현장을 촬영하기 힘든 제약으로 사진과 녹음파일, 보도기사 등을 엮어낸 콜라주 형태 구성을 주로 활용한다. 하지만 목소리 출연은 스쿨 미투 당사자였던 용화여고 출신 활동가들에 의해 행해졌다. 언론에 보도돼 유명세를 치렀던 학교 건물 유리창 포스트잇 부착 운동 당시 배경은 물론, 현장에서 교사들과의 논쟁 순간들이 생생한 육성으로 재연되어 당시의 분위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음울한 잿빛 위주의 단조로운 화면 컬러를 통해 담장 안에 가둬진 청소년 인권의 현주소가 실감 나게 전달된다. 자신들을 마치 인질이나 수감자인 양 억압하는 어른들의 횡포에 맞서야 하는 십 대들의 고뇌들도 당사자가 아니라면 쉽게 이해할 수 없게 마련인데 <여고괴담>에선 그런 ‘디테일’한 당시 재학생들의 고민이 소복이 담겨 있다.

흑백 위주로 구성된 화면 속 풍경은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 전개를 효과적으로 지원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뭐 그 정도 갖고 그러냐?’ 또는 ‘설마 교육자가 그럴 리가?’ 하고 치부하기 딱 좋지만, 피해자 개인에겐 두고두고 악몽으로 남게 될 추행과 폭력의 기억들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에피소드 제목 그대로 음침하게 재구성한다.

 

#2.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 피해자가 살아남기 위해

두 번째 단편은 이솜이 감독의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다. 감독은 자전적 체험을 실험영화 스타일로 표현한 전작 <관찰과 기억>으로 크게 주목받은 바 있다. 이번 작업 또한 앞 세대 감독이 보다 전통적인 기록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했다면 선택과 집중을 명확히 하는 파격적 전개가 돋보이는 결과물을 선보였다.

 

"애프터 미투" 영화 스틸 이미지
<애프터 미투> 스틸 이미지

이야기가 시작되면 한 중년 여성이 공책에 마치 받아쓰기 숙제하듯 단편 제목과 동일한 문장,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를 하루에 100번씩 필사한다. 대체 저 문장은 어떤 의미를 지녔기에 저렇게 강박적으로 저 여성은 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걸까, 관객은 저절로 궁금해질 법하다. 이어서 주인공의 일상이 내레이션과 함께 짤막하게 묘사된다. 겉보기엔 그녀는 열심히 씩씩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의 내면에는 떼어낼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잠복해 있다. 유년 시절 고향에서 겪었으나 누구에게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성폭력의 기억이다.

악몽에 패하기 싫었기에, 살아남고 싶은 발로에서 주인공은 겉으로는 더 당차게, 더 남성적으로 호탕하게 스스로를 포장하며 생존을 위해 분전해왔다고 한다. 하지만 근본 문제의 치유는 불가능한 상황에서 겉과 속의 괴리는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그녀를 더 피폐하게 만든 것 같다. 그런 해묵은 상처에서 주인공은 이제 탈출을 시도한다. 9살 때 당했던 상처의 의미를 그녀는 40살이 되어서야 온전히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제 주인공 나이 49살에 마침내 그녀는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도전에 나선다.

아마도 아주 오랜만에 방문하게 된 남쪽 고향땅. 하지만 영화 속에서 주인공은 누구와도 재회하지 않는다. 먼 길을 달려 도착한 그녀가 향한 곳은 인적 없는 논과 밭, 야산이다. 그곳에서 따로 듣는 이도 없어 보이는데 주인공은 스피커를 켜고 마이크를 든 채 자신의 지난 상처, 누구에게도 말 못 한 사연을 토해내기 시작한다. 과거의 수난에 굴복하지 않고 행복을 찾아내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녀만의 대나무 숲인 셈이다.

화면 속에서 보이듯 비장한 결의를 다지고 내려간 고향에서 주인공이 이제 가해자를 잡아 족쳤으면 하는 기대감을 품은 이들도 있을 테지만, 영화의 포커스는 그와는 거리가 꽤 있다. 주인공은 오랜 시간 스스로를 억압하고 죄의식에 빠지게 만든 침묵의 감옥을 탈출하는 데 집중한다. 이것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과는 백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 행동이다. 피해자 혼자 속을 삭이며 죄의식과 가책에 빠지는 게 아니라 꿋꿋하게 상처를 극복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보상받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일 테다.

<100. 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는 미성년자 성폭력, 그것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마 친족 혹은 동네 이웃이 저지른 그날의 끔찍한 기억을 넘어서기 위해 망각이 아닌 드러내기로, 자책이 아니라 당당한 고발로 발상을 전환한다. 해당 소재에 관한 관성적인 서사와 차별화되는 이야기 방식만으로도 관심 가질 만한 시도다.

 

<애프터 미투> 스틸 이미지

 

#3. <이후의 시간>, 장기전을 대비하는 태세 구축을 위해

세 번째 단편은 강유가람 감독의 <이후의 시간>이다. 감독은 <이태원>, <시국페미>, <우리는 매일매일> 등 작업을 통해 여성주의 시각과 함께 역사적/사회적 맥락을 조명하는 기획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여기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화예술계 성폭력에 대항해온 미술, 영화, 연극 분야 활동가 3인의 인터뷰를 위주로 구성된 <이후의 시간>은 4편의 작품 중 가장 구조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은 부산지역에서 문화예술계 성폭력 대책위원회 활동가로 일하는 시각예술 작가다. 활동을 시작한 뒤부터 지역에서 연대 활동에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본업에 집중할 시간이 통 나지 않는다고 한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이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보는 눈이 없기에 문제가 더 고질적으로 심각한데도 누군가가 십자가를 메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인식되는 걸 참지 못한 작가는 어느새 활동가가 되어버렸다. 자신의 출발점인 창작을 할 짬이 없는 게 아쉽지만 일련의 사회참여와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활동 또한 문화예술인의 사회적 역할이라 생각한다며 웃음을 짓는 배경에는 그동안 지역 문화예술계 미투 문제를 제기하고 확장해온 활동의 고충과 특질이 세세히 드러난다.

두 번째로 등장한 영화 쪽 활동가는 본 프로젝트의 공동 프로듀서이다.(독립영화단체 해당 활동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그 또한 개인 창작과 연대 활동 사이의 긴장과 고뇌를 생생한 경험담으로 소개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대응할 활동가 풀이 작다 보니 일만 터지면 자신에게 상황이 들이닥친다. 정신없이 대처하는 데 힘을 쏟다 보니 정작 자기 영화는 제대로 못 만들면 어떡할까 걱정한다. 이때 표정은 열렬한 투사가 아닌 바로 늘 갈등하는 나 자신을 보는 듯 누구나 공감할 법하다.

가장 답답할 때는 차라리 격렬한 논쟁이 일어나면 좋으련만 문제 해결에 자신과 소수 동료가 허덕거리는데도 대다수가 눈치 보며 침묵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일이 터질 때마다 ‘여성단체는 대응 안 하고 뭐 하냐’는 시비를 경험하는 단체 활동가의 전형적 딜레마다. 그런 냉소와 조롱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질곡으로 작용하는지 비슷한 고민을 해온 이들이라면 “맞아, 맞아”하며 공감할 부분이다. 그런 와중에 고생해서 완성한 영화의 관객과의 대화 현장 감독의 표정은 무척이나 즐겁고 환해 보인다.

연극 쪽 활동가도 오랜 고심 끝에 문제 제기에 동참해 활동한 후 겪게 된 상황과 고민을 토로한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본인 작업을 온전히 수행할 여력은 줄어들고, 그로 인해 나서기 좋아하지만 창작자로서 공정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문화예술인의 불안과 소수에게 무한책임을 요구하는 풍토는 곳곳에서 지적된다. 그래도 역시 자기 공연을 할 때 가장 기운이 난다며 춤사위를 선보이는 순간은 작품 속에서 가장 파워풀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애프터 미투" 영화 스틸 이미지
<애프터 미투> 스틸 이미지

 

#4. <그레이 섹스>, 가지 않은 길에 들어서는 용감한 도전

네 번째 단편은 소람 감독의 <그레이 섹스>다. 단편 <먹방>과 <통금> 등에서 감독 자신의 개별적 고민과 문제의식이 사회적 주제와 맞물리는 경험을 영상화했다. 이번 작품은 스타일이 한층 더 숙성된 형태다. 앞의 세 작품이 분야를 나눠 미투 운동 이후의 현재 상황을 소개한다면,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동안 미투 운동 논의의 사각지대, 경계 선상에 숨어있던 측면을 끄집어내 새로운 결의 화두를 제기하는 도전이다.

작품이 시작되면 목소리를 변조하거나 다양한 명화의 이미지를 차용해 등장하는 익명의 여성 이야기로 화면이 가득하게 채워진다. 무수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지극히 개별적 이야기들은 점점 물줄기가 모여 강이 되듯 하나의 화두로 집결한다. 그 화두는 일상에서의 사회적 제약과 차별의 시정을 요구하고, 안전하게 살 권리를 외쳐온 여성주의와 미투 운동 가운데서도 각자 개별적 삶에서 거대한 비중을 차지하는 성적 욕망의 문제에서 파생되는 쟁점들이다.

여성주의자로 자신을 규정하는 이들 역시 대다수는 전통적 이성애 관계와 성 역할이 구분된 성생활을 하게 마련이다. 무성애 혹은 동성애가 이들에게 근본적 해결책이 되거나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해당 영역은 강고하게 보수적이다. 이미 압도적으로 남성 중심으로 짜인 현재의 성문화를 어떻게 바라보고 변화시켜야 할지 쟁점을 던지는 기획이라 하겠다. <그레이 섹스>는 그 논쟁의 가운데로 나아가 언젠가는 말해져야 할 문제의 조각을 전면 개방시킨다.

흔히 피해자 중심주의로 칭해지는 여남 사이 이성 교제와 성생활 관련 논란에서 본 작품은 제목 그대로 ‘회색지대’를 고찰한다. 성적 욕망에 의해, 혹은 사회적으로 형성된 고정관념에 의해 가스라이팅 당하는 개개인의 문제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여성 당사자 개별의 상황을 딱 잘라 정리하기 곤란하지만, 분명히 현재 사회적 관념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더 혼란만 확산할 상황이라는 점을 부각하며 논의를 위한 출발점에 서자고 용감하게 ‘던지는’ 작업인 셈이다.

네 편의 단편 상영 순서 조합을 놓고 제작진은 상당한 공을 들여 치열하게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한다. 그 지난한 과정 끝에 마지막 파트로 <그레이 섹스>가 배치된 것은 최적의 조합이라는 생각이다.

 

3_ 이보 전진을 위한 전열 갖추기의 시간

20분 전후의 4편이 차례로 관객 앞에 각자의 쟁점과 주제를 선보였다. 그런데 아직 러닝타임이 몇 분 정도 남은 것 같다. 여기에서 화면은 2021년 서울과 부산시장 재‧보궐선거 현장으로 관객을 인도한다. 초반에는 호흡이 툭 끊어지고 사족으로 끼워 넣는 느낌이 들 만큼 이질적인 느낌이다.

하지만 곰곰이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휘발된 기억을 되새기게 된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두 지자체장 선거는 모두 성폭력 사건과 미투 운동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주로 서울시장 선거 위주다) 등장하는 당시 후보의 선거운동과 현수막 내용에는 부동산 욕망을 부추기는 개발과 성장주의 일색이었음을 카메라는 환기한다. 그리고 미투 활동가들이 격분해서 외치는 기자회견과 집회 장면이 뒤를 잇는다. 어떻게 시작된 선거인데 미투 관련 정책이나 입장은 찾아볼 수 없냐는 정당한 분노다. 하지만 그 외침은 정쟁 속에 외면당했고, 그 순간 백래시 전성시대가 모두에게 인식되었다.

그런 일보 후퇴의 생생한 기억과 그에 대한 분노의 용광로가 (영화적 재미를 희생해가면서까지) 대미를 장식하며 <애프터 미투>의 탄생 의도를 다시 한번 관객에게 각인시킨다. 비록 공세에 대한 기득권과 반동세력의 반격이 휘몰아치는 엄동설한이지만, 그저 회한을 안고 추억을 곱씹을 때가 아니라는 호소를, 영화를 만든 이들은 던진다. 새롭게 곳곳에 숨은 아군을 발견해야 할 시간, 그리고 재반격을 도모해야 할 시간, 이보 전진의 전열을 준비하는 데 영감과 혜안을 제시하고 공동의 과제를 준비할 때가 이제 도래한다.

 


작품 정보

 

애프터 미투 #AfterMeToo

2021년. 한국. 다큐멘터리·옴니버스

미개봉, 85분, 15세 관람가

감독 박소현, 이솜이, 강유가람, 소람

PD 박혜미, 남순아

촬영 송영윤, 이세연 음악 이민휘

배급 (주)시네마달

2021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상영작

2021 광주여성영화제 상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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