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일 목요일 저녁 6시 때아닌 소나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경산시청 앞에서 근 100일째 투쟁 중인 택시 노동자들의 천막 옆 보도에서는 「성락원 학대 피해자 긴급구제 입장 촉구 노숙 농성 결과 보고대회 및 탈시설 권리 쟁취를 위한 투쟁 문화제」(이하 ‘투쟁문화제’)가 열렸다.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참여를 바라는 마음으로 재주 없는 글이지만 문화제에서 낭독한 발언문을 공유한다.

 

▲박재희 420경산공투단 공동집행위원장은 투쟁 문화제에서 노숙농성 결과를 보고하며, 앞으로의 투쟁을 결의했다. ⓒ김기현

 

안녕하세요!

저는 경애 친구 김기현입니다.

성락원 학대 피해자 긴급구제 촉구 농성이 일단락되던 날 경애와 아리 씨에게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실 제가 더 고마워해야 할 일인데 말이죠.

제가 그 노숙농성에 잠시나마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착해서도 아니고, 정의로워서도 아닙니다. 다만 이름조차 모르는 그 피해자가 내 친구 경애일 수도 있고, 종광 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고통을 몸짓과 소리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그 사람이, 만약 나의 친구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 피해자가 폭력에 무방비인 상태로 사는 상황이, 엄청난 불길이 산을 뒤덮는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지만, 피해자 분리 조치가 이뤄지는 데는 4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만약 그것이 산불이었다면, 아마 경산은 벌써 잿더미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월호가 속절없이 가라앉는 것을 보았고, 구의역 사고를 보았고, 컨테이너에 깔려 숨진 이선호 군의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들었습니다. 매번 사람 목숨을 잃고서야 사람들은 안전 불감증이 문제라 합니다. 그러나 그도 잠시 다시 우리는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으로 되돌아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예산은 한정되어 있고, 일에는 경중이 있다고요. 그러면서 아마 이렇게 말할 겁니다. 아동학대도 심하고, 노인학대도 많고, 그러한 폭력적 학대는 이미 너무 많아서 다 처리하기 힘들다고요. 그렇다면 산불은요? 그런데 우리 주변에 그런 학대가 만연하다면 당장 우리 모두 다 같이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이 내 친구의 일이라면 먼 산 불구경하듯 할 수 있을까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는 ‘행복한 미래! 희망 경산’에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산불 예산은 있지만,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피해자 분리 및 자립을 위한 예산은 마련조차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희망 경산이 당장 눈에 보이는 행정에만 급급하고, 산불만큼이나 심각한 이 일은 보이지 않는다고 너무 안일한 거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농성장의 밤.
농성장의 밤. ⓒ김연주

저는 이번 노숙농성에서 시설 내 직원들이 이용자에게 폭력을 가하고, 또 이용자가 이용자를 폭행하는 상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자가 약자를 폭력으로 억압하는 구조는 늘 폭력을 반복 재생산하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세월이 좋아졌다지만 지금도 종종 군대에서 계급 서열에 따라 맞고,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군기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요. 학대하는 부모는 말합니다. ‘애 교육을 위한 것’이라고요. 아마 성락원에서도 말할 겁니다. 안 그러면 관리가 안 된다고요.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고, 억압이 또 다른 억압을 만듭니다. 그렇다면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끊어낼 수 있습니다!

폭력이 폭력을 낳듯, 사랑이 사랑을 낳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자본주의 근대화를 거치면서 당연시해 온 억압적 문화는 만들어진 것이지, 그것이 정상 사회는 아닙니다!

 

제가 이 노숙농성에 들렀던 날 어떤 남성이 자칭 ‘장애인’이라면서 불쌍한 개 한 마리를 끌고 나타나 위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면서 한 말이 “너네들이 장애인들 망신 주고 있다”였습니다. 저는 말합니다. 지금 여기 있는 분들 덕에 경산이 드디어 진정으로 행복한 미래 희망 경산이 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미래! 희망 경산’ 경산시에 요구합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문제가 발생했다고, 그것이 문제라서 안 보이게 덮어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거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이 발생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폭력이 지배하는 사회는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경산시는 성락원과 같은 수용소에서 사람들을 구하십시오. 그리고 하루빨리 그들이 이 사회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원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공감하고 앞에 나서는 용기를 보여준 경애, 종광, 아리, 재희 선생님 등 이 일을 위해 힘쓰시는 모든 분께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이야기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8월 25일 밤 정체 모를 남성이 농성장에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는 소란이 있었다. 26일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유미 씨는 겨우 휠체어를 침대 삼아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를 목격한 강아지 로즈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한참을 그 남성이 나타난 방향을 향해 주시했다. ⓒ김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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