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가요무대를 보며
어느 날 밤 가요무대를 보며
  • 정경애
  • 승인 2019.09.23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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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10시쯤, 밖에 바람을 쐬러 잠깐 나갔다가 들어오니 가요무대를 하고 있네.
(이날은 “친구”를 주제로 노래공연을 함)
난 가요무대나 노래자랑이나 뭐 노래가 나오는 방송은 아예 보지를 않는다.
선영 씨가 제일 좋아하는 방송이라 지겹도록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는 왠지 다른 데 돌릴 생각도 않고, 그냥 봤었다.

가요무대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시설에 있을 동안의 여러 생각이 많이 났지만, 특히 그중에 선영 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 삶을 생각해봤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선영 씨한테 아무것도 못 해준 게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지금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선영 씨는 나와 동갑인 친구다. 어렸을 때 안동에서 왔다는 것밖에 잘 모른다.
지금 선영 씨의 모습을 생각하는 중인데 얼굴이 작고 동그란 게, 새삼스레 귀엽구먼….
화장이나 액세서리를 너무 좋아하고, 예쁘게 꾸미는 것을 좋아한다.
아주 짧은 머리에 가르마를 이대 팔로 해서 양쪽에 핀을 꽂거나, 아니면 손수건을 머리카락처럼 머리에 묶고 (우리가 보기에 많이 이상한데도) 저녁때까지 있는다.
얼마나 머리를 기르고 싶었으면… 지금 생각을 해보니 안쓰럽네….
선영 씨도 여느 여성들처럼 예쁘게 꾸미고 싶었을 텐데 말이야….

기억에 남는 것은?
‘드릴까요?’ 또는 ‘줄까요?’를 안동(?)말로 “죽꾜?”라고 하던 게 생각난다.
선영 씨가 말 안 들을 때 내가 폭력을 행세한 것, 그래서 서럽게 우는 모습도.
난 방에 거의 안 있는데 명절이었던가, 그날에는 왜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보고 싶은 TV 프로그램과 동시에 선영 씨가 좋아하는 노래 방송을 할 시간이었다.
근데 내가 그것을 보고자 했는데 선영이는 기어코 노래 방송을 봐야 한다고 하니 옆에서 뭐라 했던가? 뭣 때문에 화가 확 났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큰소리 내고 그냥 (신관 컴퓨터실로) 나가버린 기억이 난다.
또 외부 사람들이 와서 프로그램하면 맛있는 간식을 받아오는데, 그걸 안 먹고 신난 얼굴로 나와 지애 언니에게 먼저 가져다준 모습들이 내 머리에 담겨 있다.
먹는 것도 좋아하는데 나누어 먹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네… 참말로 선하고, 착한 사람…….
그러고 보니 난 그 “고맙다”라는 인사를 못 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하네…….
그때는 내가 왜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참말로 못돼먹은 애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선영 씨는 지적장애인이다. 직원들이나, ‘똑똑한’ 사람들에게 선영 씨는 그저 만만한 사람이었다. 뭘 시키든 말 잘 듣지, 화 안 내지, 불만이 없지, 말을 제대로 못 하니 더더욱……. 
그런 사람이 방마다 한두 명씩은 꼭 있었다. 선영 씨와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노동착취로 인해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를 인제야 생각해보네….
나와 같은 사람들이 각 방에 있었다면 모두 다 공감할 것이다.

뭐 직원이 아프고, 많이 힘들 때는 부탁할 수 있고, 도와줄 수가 있어!
하지만 그 도가 넘었잖아!
남들 눈에 보이는 일들은 직원들이
남들 눈에 띄지 않는 일들은 선영이가 다 했었다.
그런 선영 씨에게 돌아오는 건 짜증, 잔(큰)소리, 몽둥이, 벌이었다.
거기다가 철없던 나도 선영 씨한테 직원들처럼 그렇게 했으니 얼마나 고단하고, 힘들었을까?
내가 뭐길래? 왜 못됐게 그랬을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너무 고맙고, 또 너무 고맙네요….
어떻게 보면 선영 씨가 나를 키운 거네요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직원은 일하면 월급을 받잖아. 안 그래?
그런데 선영 씨를 그렇게 부려먹고는 아무런 보상도 없었다는 게 이게 말이 돼?
온갖 칭찬은 직원들이 다 받지 뭐람!
“이런 일 하는 게 쉽지 않을 텐데 천사네요…”
와~ 욕이 절로 나오네!
선영 씨도, 선영 씨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도 일했는데 말이다!
직원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한 보상으로 월급을 줬어야 했다고 난 생각한다. 그들도 일한 노동자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이 사실은 시설에서도 부정 못 할 것이다.

시설 직원들이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거주인 모두가 잘 못 움직이는 방에서는 직원이 모두 다 하겠지만…)
선영 씨와 같은 사람들도 직원 못지않게 노동을 하였다는 사실을 그 누군가가 당연하게 알아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밝혀야 한다. 내가 온갖 비판과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인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공부하고 있는 지금의 나와, 그 옛날 못됐던(뭐 지금도 못됐지만…) 정경애가 뭐가 다른 것인가?

난 왜 이제야 이런 생각을 했는지, 참 그렇네…….


2019년 9월 17일 씀

 

저는 경산장애인자립생활센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경애입니다.

시설에서는 26~7년을 살았고, 지역사회에 나와 산지 10년이 됩니다.
지금도 시설에 있는 사람들, 그 중 한 친구가 문득 생각나 글로 써봅니다. 이 친구도 일을 한 노동자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이 글로서 나의 진실된 마음으로 그 친구에게 사과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 필자 이외에 본문에서 언급된 이름은 ‘가명’임을 알려드립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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