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5일 자립센터 체험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권 모씨의 빈소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지난 달 25일 자립센터 체험홈에서 숨진 채 발견된 권 모씨의 빈소에 국화꽃이 놓여있다.

 

장애인자립생활을 지원하는 체험홈에서 장애인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돌봄 공백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산지역 A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서 장애인 권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평소 고혈압과 뇌전증 약을 복용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부검 절차 없이 장례가 치러져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고(故) 권 모 씨는 10월 12일 병원에서 자궁질환 관련 수술을 받고 5일 후 퇴원하여 체험홈에서 회복 중인 상태였다. 당시 수술 경과가 좋아 회복 기간을 거쳐 인근 장애인보호장업장으로 출근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권 모 씨는 퇴원 8일 만인 25일 오전 자립생활 체험홈 숙소에서 숨진 채 담당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권 모 씨가 숨질 당시 현장에 아무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돌봄 공백으로 응급 상황 대처가 제때 이뤄지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숨진 권 씨는 지난 5월 체험홈 입주 당시부터 숨지기 전까지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생활했다. 지적장애 2급이던 권 모 씨는 체험홈 입주 후 3개월이 경과한 9월 초, 활동지원 110시간 확정 통보를 받았지만 활동지원사를 구하지 못해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자립센터 측은 “활동지원사를 파견하는 경산지역 중개기관 두 곳 모두 활동지원 신청 인원이 포화 상태라 대기 기간만 1년 이상이라고 했다”며 “수술 이후에도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자립센터에 따르면 권 모 씨는 2022년 5월 경산시 B장애인거주시설을 나와 A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운영하는 여성 체험홈에서 생활하면서 자립을 준비해왔다.

탈시설 이후 권모 씨가 복부 통증을 호소하면서 지난 7월 병원에서 하복부에 근종이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근종은 탈시설을 준비하던 5월경 병원 검사를 통해 시설 측에서 확인하였으나 자립센터 측에 ‘6개월 후 검사를 받으면 된다’고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 모 씨는 시설 생활 당시부터 하혈 증세를 보였으나 담당자들은 단순 생리 현상으로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시설 퇴소 전부터 빈혈과 두통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인 C 씨는 “빈혈은 영양이 부족할 때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하혈로 인한 빈혈 발생은 흔히 일어난다. 빈혈이 올 정도면 출혈이 많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권 모 씨는 체험홈 입소 이후 활동지원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장에서 구입한 반찬을 먹으며 대부분 혼자서 식사한 것으로 취재 결과 드러났다.

자립센터 관계자는 “권 모 씨는 평소 혼자서 일상생활이 가능한 상태였다”라며 “구강 장애가 있어 시설에 있을 때도 따로 식사했다. 체험홈에서도 혼자 밥을 먹었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마련된 체험홈에는 권 씨 외에도 장애인 이용자 두 명이 더 있었지만 방을 각자 사용했으며 식사 등 일상생활이 독립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자립센터 측은 “체험홈 담당 직원이 있지만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야간 당직 근무자를 배치하지 못한 상황”이라며 “돌봄 공백을 없애기 위해서는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A 센터는 경산시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현재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단기 거주 체험홈 세 곳을 운영 중이다. 남성 장애인 이용 체험홈 한 곳과 여성 장애인이 거주하는 체험홈 두 곳이 있다.

경산지역에서 탈시설 이후 숨진 장애인은 이전에도 있었다. 올해 4월 15일 새벽, 급성백혈병을 앓던 탈시설 장애인 스물여덟 살 김 모 씨는 병원 입원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김 모 씨는 병세 악화로 입원하기 전까지 퀵 배달을 하면서 항암 치료를 받았다. 입원 전 통증으로 구급차를 직접 불러 일주일에 네다섯 번 응급실을 찾았지만 그 과정에서 일상생활 지원 등 별도의 돌봄 서비스 제공은 이뤄지지 않았다.

앞서 2018년 5월에는 탈시설 최중증 와상 장애인 이 모 씨가 폐 질환이 갑작스럽게 악화해 숨졌다. 누워서만 생활이 가능한 이 모 씨는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활동지원사와 충돌로 빈번하게 돌봄 공백이 벌어지는 상황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탈시설 장애인 돌봄지원과 관련하여 정부 차원의 정책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의료인 D 씨는 “체험홈은 수술한 사람이 적절한 사후 조치를 받기엔 미흡한 곳으로 보인다. 환자가 장애가 있다면 통상적인 케어가 어려울 것”이라며 “이를 보완할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산지역 시민 E 씨는 “고인의 죽음이 안타깝다. 돌봄 공백 상태에서는 응급 대처나 사고 예방이 어렵다. 민간위탁에 의존한 장애인 자립 지원 시스템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또 다른 죽음이 나오지 않도록 사회서비스 공적 지원 등 장애인 자립 생활 지원에서 지자체와 정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장애인 탈시설 자립 정책 강화를 위해 장애인거주시설 전수조사와 민관협의체 운영을 거쳐 2021년 ‘탈시설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로드맵’을 발표한 바 있다. 정부가 발표한 로드맵 추진을 위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 지원 시범사업’ 대상 지자체로 경북 경주시가 선정돼 현재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자립센터 체험홈 거주인 사망과 관련하여 경산시청 사회복지과 김지연 팀장은 “장애인 돌봄 공백 재발 방지를 위한 정책방안을 찾고 있다”라며 “시범사업을 진행 중인 경주시를 비롯해 다른 지자체 정책 현황을 파악하여 재발 방지 계획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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