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교실에 갔더니 민국(가명)이가 눈에 띌 정도로 두껍고 커서 백과사전처럼 보이는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밑줄을 그어가며 열중하여 읽고 있었다. 무슨 책을 읽고 있느냐 물으니 요리의 원리와 각종 조리도구의 특성, 재료별로 활용 가능한 요리법까지 총망라된 책이라고 상기된 표정으로 설명을 늘어놓았다. 민국이는 조리 계열 특성화고등학교에 최종 합격하였다며 입학 전에 스스로 조리 이론을 공부할 계획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민국이의 말을 들으니 몇 년 전 비슷한 계열의 특성화고교로 진학했던 현규(가명)가 떠올랐다. 고 3이 되던 무렵 학교에서 제공했던 해외 취업 연수 프로그램에 참여 후 귀국한 현규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아이는 뜻밖에도 장시간에 걸친 고강도 노동을 저임금을 받으며 헐값으로 팔아야 했던 경험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장밋빛 기대를 품고 비행기에 홀로 몸을 실은 아이가 목도한 것은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환경미화원들은 주로 새벽과 밤에 야간 업무를 한다. 어둠이 내린 시간 동안 불쾌한 것들이 말끔히 제거되어 있기를 바라는 욕망에서 비롯된 관행이다. 하지만 그 욕망은 사람의 몸과 힘을 갉아먹는다.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로 규정된 위험 요소다. 잦은 수면 부족과 피로 누적으로 인해 생체리듬에 교란이 발생하게 되면 자율신경계에 이상 영향을 미치게 되어 뇌졸중, 심근경색 등과 같은 뇌심혈관계질환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아침이 오면 시민들은 밤사이 말끔하게 정리된 거리에서 하루를 열고 일과를 시작하지만, 그 쾌적함이 누구의 노동을 딛고 얻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팬데믹 상황과 맞물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커머스* 시장이 전면에 내세운 ‘로켓배송, 새벽배송’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물류업 노동자들의 존재 역시 그러하다.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장보기가 불가능했던 시기에 쿠팡과 마켓컬리, SSG 등이 ‘신속’을 기치에 내건 택배 서비스로 기업의 몸집을 불리며 치솟는 수요에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대체 가능한 노동력을 끊임없이 밀어 넣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동안 많은 노동자가 희생되었다. 급변하는 산업 양상에 발맞추어 변하지 못하고 고여 있는 국회와 정부가 ‘작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여 기업의 미친 속도전에 불을 붙였고 기업은 법이 따라오지 못하는 속도로 날뛰며 법의 맹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물류산업 노동자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더욱 높은 이유는 기업들이 급증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물류택배업 종사 노동자의 최초 채용조건 문턱을 대폭 낮추어 둔 탓에 십 대 청소년, 취업 준비생, 저소득 중장년 여성 등 사회 취약층이 유입되기 가장 손쉬운 일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민중의소리, 박미숙 외 6인)는 ‘신속, 편의’에 대한 욕망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들여다보도록 우리를 촉구한다. 과로와 야간노동의 위험을 인지하면서도 ‘로켓배송’을 선택해야만 하는 이유가 우리에게 남아있는지, 기업이 공들여 선보인 세련되고 매끈한 이미지가 없던 필요를 주입하여 소비자들을 훈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보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사회는 왜 일과를 마치고 장을 보러 갈 저녁을 허락하지 않는지, 모두가 과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시간 빈곤이 어찌하여 이토록 일반화된 사회인지, ‘시간’에 대해 정치적으로 사유해 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단축과 의무휴업일 운영이 일반화된 지 십 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좇는 멈춤 없는 기계적 생산과 맹목적 성장에의 추동에 맞서 공생과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멈추고 제동을 걸 수 있음을 증명하고 더 많은 죽음을 막을 수 있음을 증언하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작은 희망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글_ 달은

 

*인터넷 등 온라인을 통한 전자 상거래. 편집자 주


※ 뉴스풀과 달팽이트리뷴 기사 제휴로 이 글을 게재합니다. 달팽이트리뷴은 포항 효자동에 있는 달팽이책방에서 발행하는 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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