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늘 깨어있었다. 모두가 잠든 늦은 시간까지 반찬을 만들고,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을 차렸다. 30년 동안 일을 쉰 적이 없었던 엄마의 하루에는 언제나 밥상을 차려야 하는 노동이 있었다.

엄마는 타지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와 학교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다가 ‘MSG가 가득 들어간 음식을 매일 먹을 나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며 눈물을 보였다. 그 후 매달 반찬으로 꽉 채운 상자가 자취방으로 배송됐다. 곰팡이가 생겨 반찬을 버릴 때면 엄마에게 전화해 쓸데없이 왜 이렇게 많은 반찬을 보냈느냐고 투덜거렸다.

엄마는 나와 냉랭함이 감도는 날에도 밥상을 차렸고, 아빠와 크게 싸웠을 때도 밥과 반찬을 만들어놓고 조용히 집을 나섰다. 내가 퉁명스럽게 대답할 것을 알면서도 엄마는 늦은 밤 귀가하는 내게 언제나 “밥 차려 줄까?”라고 묻는다. 밖에서 일하고 돌아와 가사노동을 하는 것이 당연한 듯 사는 엄마를 보며 생겨난 답답함과 미안함은 어느새 내 안에 부채감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가족의 생일 전날 미역을 불리고 다양한 반찬을 만들던 엄마는 당신의 생일에도 직접 미역국을 끓였다. 외식할 일이 있을 때마다 아빠는 저렴하다는 것을 핑계 삼아 집에서 밥을 먹자고 말했다. 그 계산에 엄마의 노동력은 고려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엄마가 혼자 차린 밥상을 코앞까지 대령하면 밥을 먹었다.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도 나는 오랫동안 그것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여태껏 집에서 내가 먹어 온 밥은 다른 여성을 착취한 결과였다. 그 사실을 인지한 뒤부터 가능한 한 엄마를 착취하지 않으려 했지만, 엄마는 “어차피 시집가면 하게 될 일을 미리 하지 말라”며 내 손이 상할 것을 염려했다. 결혼으로 귀결되는 발언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가사노동을 홀로 감내하려는 엄마가 기막혔다. 그 사이 엄마의 손은 데고, 붓고, 쭈글쭈글해졌다.

 

언니가 결혼한 뒤 처음 외식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어김없이 아빠는 집에서 먹기를 원했다. 당연히 요리는 엄마 몫이었다. 형부를 포함한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하는 와중에 아빠와 형부는 자신의 배우자를 부르며 부엌에서 이것저것 가져올 것을 요구했다. 엄마와 언니는 밥을 먹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엌과 식탁을 오갔다. 형부가 언니를 부를 때 엄마는 언니 대신 일어나기도 했다. 언니와 엄마는 서로를 위한답시고 남자들의 심부름을 자신이 하겠다며 약간의 실랑이까지 벌였다. 나 역시 엄마와 언니를 돕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날 식사하는 동안 아빠와 형부는 자리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채 편안히 식사를 마쳤고, 엄마와 우리 자매는 식사 후 설거지와 뒷정리를 했다. 평생 엄마의 가사노동을 보고 자란 딸들이 자연스럽게 엄마의 노동을 분담하게 된 순간이었다.

 

작가 우사미 린은 소설 『엄마』에서 “엄마를 낳아주고 싶어. 낳아서 처음부터 키워주고 싶어요. 그러면 분명히 구해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딸이 엄마에게 갖는 안타까움, 애증, 엄마를 구원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했다. 엄마의 처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목격하며 해소되지 않는 복잡한 감정들을 안고 사는 딸의 심정을 한 마디로 나타낸 “엄마를 낳아주고 싶다”는 문장은 오랫동안 내 마음에 머물렀다.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스스로를 가족에 바치는 삶을 살아 온 그가 오랫동안 미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감정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표출했다. 엄마가 페미니즘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터져 나온 내 말에 엄마는 오히려 자존감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야 그 말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나 또한 무시한 것임을 안다. 가부장제의 최전선에 있는 엄마에게 필요한 건 “왜 그러고 사느냐”는 힐난이 아니라 엄마의 노동을 인정하는 한편 개인으로서의 엄마를 존중하는 딸의 마음일지 모른다.

 

맞벌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남성보다 2시간 13분이 더 많다. 맞벌이라 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세 배가 넘는 시간을 가사노동에 사용한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수치의 조사 결과는 기혼 여성의 삶을 가늠케 한다.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가사노동자로 고정하는 가부장제가 우리 사회에 여전히 견고하다. 게다가 한국식 자본주의는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여성과 남성 모두를 가부장제의 피해자로 만든다. 누구도 괜찮지 않은 억압의 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엄마와 아빠, 아들과 딸에게 가부장제의 경계를 뛰어넘는 용기와 실천이 필요하다. 그 실천의 한 방식으로 나는 더 이상 엄마의 밥상을 기다리지 않는다.

몇 년 전부터 아빠 스스로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국과 반찬은 엄마의 손을 빌리지만, 혼자 식사해야 할 때면 식탁에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까지 아빠가 한다. 어쩌면 아빠도 이제야 엄마만의 가사노동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밥상을 차리는 아빠의 용기가 엄마의 밥상을 기다리지 않는 내 실천을 지속가능하게 한다.

 

나는 엄마의 얼굴에서 페미니즘을 발견한다. 맞벌이 여성의 일상에 고단함을 더하는 가사노동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다는 말이 모순이고 궤변이라는 사실을 엄마의 삶에서 찾았다.

여성은 걸레나 국자를 손에 쥐고 태어나지 않았다. 여성은 집안에서 보이지 않는 노동자로 길러지고, 가사노동은 엄마에서 딸로 대물림된다. 사회는 여성에게 사랑과 모성에 따른 책임을 강요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여성을 악마화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엄마가 된 여성이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제 딸이기 전에 같은 여성으로서 엄마에서 나로 이어지는 착취의 굴레를 끊어야 할 시점이다. 가부장제가 어디든 존재하듯 페미니즘 역시 어디든 존재할 수 있다. 집안의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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