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부터 어른까지, 우울증부터 분노조절장애까지 인간 심리를 해체하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다. 서점에는 심리학을 입은 인문학,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치유하고 위로받으며 기댈 곳이 생겼다. 그리고 인간들은 만나면 MBTI를 묻는다. I와 E의 차이가 도대체 뭣이라고, I도 E도 아닌 인간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이 따져 묻기 시작했다.

감각적으로 강한 자극을 받으면 쉽게 피곤해지거나 가끔 신경이 지나치게 곤두서서 혼자 휴식을 취해야 하거나,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한다면, 그리고 나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 두렵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유한다. 민감성을 가진 사람들, 할머니와 어머니의 신경과민이 대물림되었다는 생각을 해 본 여성들은 나의 이야기인가 싶을 정도다.

 

책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 지은이 제나라 네렌버그, 옮긴이 김진주, 티라미수 더북, 2021. 9. 13
책 〈유별난 게 아니라 예민하고 섬세한 겁니다〉, 지은이 제나라 네렌버그, 옮긴이 김진주, 티라미수 더북, 2021. 9. 13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을 마침내 과학이 포착해 낸 이상, 우리는 더 이상 ‘제정신이 아니’라거나 ‘너무 감정적’이라거나 ‘제대로 못 배웠다’는 평가를 들을까 봐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다. p25

 

신경다양성이라는 용어는 1990년대 후반 호주의 사회학자 주디 싱어가 인간종에게서 발견된 다양한 두뇌 기질 군을 표현하기 위해 처음 제안했다. ADHD, 자폐, 조울증, 난독증 같은 ‘진단’을 받은 사람은 신경다양인이라고 볼 수 있다. 정신장애나 발달장애를 지닌 사람 역시 신경다양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신경다양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신경전형인이라고 지칭한다.

 

신경다양성을 지닌 사람이 적어도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존의 개념도 달라질 것이다. P27

월마트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물류센터의 직원 대다수는 신경다양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매년 ‘직장 내 자폐인’ 행사를 연다. 변화는 시작됐지만 아직 더 많은 변화가 필요하다. p248

 

지인의 아들이 ADHD 진단을 받았다. 생각과 감각의 처리가 남다른 아이였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장애라는 진단은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정상만 인정하는 우리 세계가 밉겠구나,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싶어 마음이 아팠다.

산부인과 의사 랜킨은 사산아를 네 번이나 받은 날, 남자 의사가 “정신 차려, 랜킨! 그렇게 감정적으로 굴다간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하는 장면을 회상한다. 엄마와 사산아를 생각하며 랜킨이 슬픔에 젖어 흐느껴 우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건강한 반응이었다.

 

민감성이 경험의 일부분으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민감성에서 비롯되는 재능은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이 감정을 더 자주 느낀다는 사실을 과학이 포착해 낸다면 숨기지 않고 자기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며 학계, 의료계, 교육계, 심리학, 정신의학, 그리고 과학 분야에서 전반에서 더욱 도드라지는 활약을 펼칠 것이다. P70

 

나는 한때 누군가의 장애에 조현병, 경계성 장애,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꼬리를 붙이고 질병의 이름으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민감한, 히스테리, 이성적이지 못한, 지나치게 감성적인’ 기질이 여성을 특정 프레임에 가둔다며 하대했다.

책은 이들을 치료해야 하는 비정상적 장애와 질병으로 낙인 하지 않고, 다른 인생을 경험하는 이들로 바라보게 한다. 그들이 무엇이든,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그들의 감정을 지지하고 포용하며 힘과 권력을 부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화 과정에서 남들과 잘 지내거나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려면 동감과 공감에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신경다양인 여성은 자신의 민감성을 자책하며 혼란스러운 삶을 살다가 자녀가 신경다양인으로 진단받을 때 자신의 장애를 발견한다. 민감한 기질과 특질, 특별한 감각처리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우리가 조절할 줄 아는 감정은 자동 반응이며, 습득의 결과물이다. 감각처리장애는 감각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조절 방식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면 된다.

(감각처리장애는 대게 감각조절장애, 감각변별장애, 감각 기반 운동장애로 나뉜다. 이들 하위 유형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감각 과잉 반응, 청각 민감성, 자세 잡기 문제 등이 나타난다.)

 

성 사회화와 성 규범, 언론의 편견과 문화적 태도는 여성과 남성이 감각 경험에 대처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메이벤슨에 따르면 여성은 내면이 불안과 우울이 겹겹이 싸인 경우가 많은 반면 남성에게는 알코올 의존증 같은 대처 메커니즘이 훨씬 자주 나타난다. p159

자폐는 살아 숨 쉬는 여러 특성의 집합으로, 범위가 넓고 다른 심리 특성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제대로 진단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대중매체의 영향 탓에 잘못된 고정관념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자신의 자폐를 스스로 진단한다. p96

호르몬으로 인해서 연구 결과가 오염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발표 가능한 연구 결과를 효율적으로 얻어내기 위해, 여성은 연구 대상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돼 왔다. P68

 

이 책은 많은 신경다양인들이 고군분투하며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감각디자이너, 랜킨처럼 의사이자 치유자가 되거나, 자폐인이면서 음향학 교수로 자질을 발휘한다. 스스로를 연구하고 조직사회에 스며들며,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는 아웃사이더(outsider) 속의 인사이더(insider) 아닐까.

민감성을 병적인 특질로 간주하는 사회, 민감성을 하대하는 사회가 제시하는 정상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이었는지 질문을 던져본다.

리더를 우대하는 세상이지만, 우리 모두 리더가 될 필요는 없다.

 

신경다양인에 대한 언론매체의 고정관념(비참하고 불편한 사람으로 자주 그려진다)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그런 시선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용기 있게 자신의 신경다양성을 끌어안아야 한다.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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