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한빛 PD 어머니 김혜영 씨가 쓴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 (김혜영 저, 후마니타스, 2021.4.18)

 

ⓒ박지영

 

또 한 명의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2017년 4월 방송사 제작 PD였던 ‘이한빛’은 방송 현장의 노동력 착취에 문제를 제기해 오다 ‘카메라 뒤에 사람이 있다’고 고발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핸드폰에 ‘나의 희망’으로 저장되었던 아들, ‘사람을 벌레로 밟고 오를 수 없어서 하늘을 향해 몸을 던진’ 아들을 위해 국어 교사였던 어머니 김혜영 씨가 아들에게 보내는 약속의 말들을 책 <네가 여기에 빛을 몰고 왔다>로 엮어냈다.

저자는 자식을 먼저 보낸 애틋함, 주변인에 대한 원망, 길을 걷다가도 쏟아지는 눈물, 공황장애처럼 다가오는 슬픔, 살아있는 자신을 자책하고 아들을 선택한 신을 원망한다.

불교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선택한다고 한다. 저자는 책을 쓰며 한빛과 함께 한 모든 날, 함께 한 모든 이야기를 기억해 내고 붙잡는다.

‘이한빛 추모제’에서 마이크를 꼭 쥔 체 눈물을 쏟으며 울부짖던 김혜영 씨를 영상으로 먼저 만난 탓일까.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읽을 때처럼 책장을 넘기는 심호흡의 시간이 필요했다.

 

p64

물빛이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대로, 거칠면 거친 대로 그곳에 항상 한빛이 나타났다.

시도 때도 없이 한빛이 불쑥불쑥 나를 찾아왔다. 기억이 점점 옅어지는 게 두려워서 안간힘을 쓰는 엄마가 안쓰러웠나.

 

자식을 가슴에 묻은 엄마는 살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반짝이는 물빛에서, 초록 잎에서 아들을 만난다. 다른 아들을 만나기 위해 글을 쓰고 집회를 나가고 1인 시위를 하고 연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난다.

 

p159

아무리 그래도 죽지 말아야 했다고, 우기는 일을 관두기로 했다.

긴 시간 많이 고민하고 아파했을 거다. 내게 가르쳐 준 것 하나는 인간의 고뇌를 단지 패배나 절망으로만 보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한빛은 이것을 뜨겁게, 슬프게 가르쳐 주고 갔다.

 

자식의 죽음은 삶이 무력해지도록 절망적이고, 하루하루가 진공상태처럼 시간은 멈춘다.

혼자일 때 자본을 담보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거대한 회사와의 싸움은 의미가 없다. 김혜영 씨는 한빛을 부활시키고 기억하기로 한다. 그리고 서로를 붙잡으며 우리가 옳다고 한다.

 

p249

한빛이 언젠가 ‘의식’에 대해 말했었다. 노란 리본을 내 가방에 달아주며 기억하기 위한 작은 의식이에요. 기억도  ‘의식’을 갖추면 용기가 생겨요. 함께하고 연대할 때 소망을 이루기가 쉽고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거든요.

 

이한빛의 죽음 이후 2018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가 세워진다. 작가와 방송미디어 노동자들은 노동인권에 눈을 뜬다. 화려하고 거대한 방송, 카메라 뒤에 가려진 장시간의 노동환경을 고발하고 조직화에 변화의 바람이 일렁인다.

동생 이한솔 씨는 형의 죽음 뒤에도 바뀌지 않는 살인적인 방송 노동 형태를 고발하며 책 ‘가장 보통의 드라마’를 엮어낸다.

전교조 해직 교사였던 아버지 ‘이용관’ 씨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세우고 방송 현장의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에 앞장선다.

 

p260

너는 죽었지만, 너의 죽음이 지옥 같은 여기에도 빛을 몰고 오고 있다고. 그리고 그 빛이 드러나 너머의 또 다른 어두운 곳까지 퍼져 갈 것이라고.

 

어둑하고 먹먹한 감정이 책을 덮어도 밀려와 덮고 읽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책을 덮는 순간 ‘사람’과 ‘노동’에 대한 ‘변화’가 간절했던 이한빛의 날갯짓이 여운처럼 밀려왔다. 놀랍게도 저자는 아들을 대신해 나를 위로해 주고 토닥여주었다. 책을 쓰며 자신의 상처를 직면했고 스스로 기억하고 약속했다.

아들 한빛에게 물려받은 기적을 나누고 있었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널 잊지 않을게

- 이한빛이 좋아했던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졸업>(2010) 가사 부분

청년들이 세상 어디에 있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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