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일상에 집중하다 문득 달력을 쳐다보면, 벌써 날짜가 이렇게 되었네, 하며 새삼 시간의 흐름을 체감한다. 두꺼운 패딩을 정리하고 공기의 부드러워짐을 느끼고 꽃봉오리 진 나무를 본다. 어느새 4월, 그리고 이제 십 년, 세월호 참사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유가족의 슬픔도 봄의 기운과 함께 다가온다. 어쩌면 세상이 세월호를 조금은 옅게 기억하고 애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일상의 순간은 매번 우리를 팽목항으로 데려다 놓는다. 그날 이후 우리는 모두 조금씩 더 불안해졌고 행복의 순간에는 자그마한 죄책감이 드리
물집 아기별꽃 잡혔어요.그저께 가죽 순 다듬는다고둘째 손가락에 잡힌 물집겨우 새살 돋았는데아침부터 마당 비질한다고 힘든가가운뎃손가락에물집이 생겼어요.나 많이 힘든 걸까요? 힘들면 쉬엄쉬엄하면 되는데자꾸만 나이 탓을 하게 됩니다. 간밤 꿈에 친구랑어릴 적 자란 동네를 한 바퀴뛰었더니아침에 일어나는데 허리가살짝 덜 아프네요.친구야!꿈속에서 만나 활짝 웃는 얼굴로나랑 달려줘서 고맙다. 냉장고 속을 뒤져유부랑 어묵을 꺼내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기름기 쏙 빼고간장 조림했습니다.나의 최애 청양고추 송송 썰어 넣었더니달콤, 짭짤, 매콤 쓰리콤보
세월호참사 피해자들에게 ‘먼저 사고를 당했다’는 말은 이 사실을 ‘먼저 알아버렸다’는 말과 같다. “내가 먼저 당했으니 당신들은 당하지 말라”는 말은 죽음의 연쇄를 삶의 연쇄로 바꾸는 혁명의 언어다. - 〈520번의 금요일〉, p387세월호참사 10주기를 맞아 경주 황오동 책방 ‘너른벽’에서 낭독회가 열린다.너른벽 서점은 4월 20일 토요일 오후 2시 너른벽(경주시 황오동 북정로 29)에서 ‘공동의 기억, 약속 세월호참사 10주기 낭독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너른벽 운영자 박슬기 씨는 “공동의 기억과 약속을
20240416 세월호 참사 10년이 흘렀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아가던 학생 250명과 교사 12명을 포함하여 304명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세월호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그 충격과 아픔으로 몸살을 앓으며 10년의 세월을 살아왔다.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검경합동수사본부와 감사원, 국회 조사에서 기업의 이윤추구를 위한 선박 개조와 화물 하역 및 한국선급 관계자의 비리와 관리 부실이 부각되었다. 그런데 왜 침몰했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국가는 재난 상황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여
민생위기와 근시안 해법의 파괴적 앙상블 앞에서나라는 부강한데 시민은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간다. 통계 지표상으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니,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날로 높아진다니 등등 연말연시마다 미디어에선 호들갑을 떨어댄다. 하지만 정작 이를 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냉소 그 자체다. 온갖 실적 근거를 보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달리는 게 맞다. 온라인 곳곳에선 평균치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출처 불명의 수치 기준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실에서 본인 포함 주변에서 평균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체 온라인의 평균소득
유치환의 시 중에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란 한 구절로 유명한 시가 있다. ‘기(旗)빨’, 혹은 ‘깃발’이란 시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向)하야 흔드는영원(永遠)한 노스탈쟈의 손수건순정(純情)은 물껼같이 바람에 나부끼고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표(標)ㅅ대 끝에애수(哀愁)는 백로(白鷺)처럼 날개를 펴다.아아 누구던가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신경 끄기의 기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미국 작가 마크 맨슨이 한국을 찾아 한국을 일컬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라
결혼기념일 아기별꽃 우리 결혼했어요.서른세 해 전 오늘그 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어요. 오늘 봄햇살이 눈부신 날입니다.야간 퇴근을 하고 온나를 위해황토방에 불을 넣고 있는 남편을 보았습니다.따뜻하게 자라는 따뜻한 배려지요. 여보!오늘 무슨 날이게요?화이트데이.에이 그건 어제 지났구요.음… 그럼 모르겠는데살짝 흘겨보는 내 눈빛에당황한 남편님머리만 벅벅 긁어댑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하고는 문을 닫았습니다.아~!결혼 축하해뭐 축하받을만한 결혼은 아니라고 봅니다.그러고는 이불 속에 빨려 들어갑니다.살짝 자고 일어났습니다. 이불을 빨아 널고청
우수 경칩이 지났습니다.아흐레 지나면 춘분입니다.24절기를 축약하면 팔절입니다. 전지(全紙)를 세 번 접어 서 여덟 장으로 나누는 것을 팔절(八折)이라고도 하지만, 한 해 이십사절기 중 중요 맥락마다 있는 절기를 팔절(八節)이라고도 합니다. 입춘, 춘분, 입하, 하지, 입추, 추분, 입동, 동지입니다. 그 팔절 중 두 번째인 춘분을 재촉하는 봄비가 어둠과 함께 보현골에 찾아왔습니다. 꼭 여름 장맛비처럼 말입니다. 저녁 여섯시 반을 넘기면 해가 지고 아침 해는 여섯시 오십분 경에 뜨니. 얼추 낮밤의 장단이 비슷해져 갑니다. 철을 잊은
삼평리 평화회관에 온 김춘화 할머니가 방 아랫목에 앉으며 말했다.“새벽까지 지는 축구 보고 얼마나 아침에 피곤하던지!”아침부터 반나절 동안 콩 한 말을 삶아 두부를 만들었다고 했다. 삼평리에서는 세밑에 만든 손두부로 명절 음식을 차리고 고향을 찾는 식구들과 나눈다.쌍둥이네 이은주 부녀회장님도 축구 때문에 잠을 설쳤다. 부녀회장님이 따뜻한 대추꿀차를 춘화 할머니에게 건넸다.미닫이문을 흔들며 지나는 바람 소리. 작은 방에 다섯 사람이 이불로 무릎을 감싸고 둘러앉아 ‘미스터트롯’을 본다.지난가을, 그때 이억조 할머니가 가져온 삶은 토종밤
한 해의 시작은 시간의 흐름을 분절하는 새 마디다. 이번 호에서는 기자들이 각자 변화한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 새로운 해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며 살아가고 싶은지 나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 동행하기바다거북 해가 바뀌면서 저는 사회적으로도 어른이 되어야 하는 나이에 가까워졌고, 그것이 최근의 생각들에 영향을 주고 있어요. 박연준 시인의 『쓰는 기분』(현암사)에 이런 글귀가 있었어요. “무언가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계산할 수 없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그것과 동행하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 어
세이레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동굴에서 보낸 시간’, ‘간절한 바람을 살아내어 변형을 일궈낸 시간’, 삼칠일의 순우리말입니다. 세이레학당협동조합은 세이레를 함께 공부하고 서로 돌보며 온전한 나를 만나는 시간으로 만들어가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다음과 같은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군위지역 공부모임 세이레학당, 세이레학당협동조합 설립- 군위군농촌신활력사업 4차 지원 사업 심사 통과 ‘군위농촌문화활력소’ 사업 진행- 싱잉볼 명상, 회복적서클 진행자 양성과정, 그림책 제작 워크숍 및 낭독회, 군위농촌문화잡지[군위것들] 발행, 군위지역 독
20년 전쯤 지역에 대형마트 입점이 예고되었다. 당시 지역 재래시장 상인들과 흔히 ‘동네 마트’라 불리던 중소형 마트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대형마트 반대 운동에 나섰다. 반대 운동에 참여한 단위들은 지역 내에서 서명운동과 일인시위, 항의집회 등을 진행했다. 노동조합에서도 지역 사회단체와 함께 운동에 동참하면서 소속 조합원에게 서명 참여를 요청했다. 이참에 지역 내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발언권을 가졌지만 지역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극복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반대 운동 내부에서도 수천여 조직을 가진 노동조합에 기대를 피력하던 상황
휴일 보내기 아기별꽃 시골살이가 그래요.초저녁 잠들고일찍 하루 시작하게 되더라구요.오늘 쉬는 날늦잠이라도 자면 좋을 텐데멋진 잠을 자고 새날을 시작하는 시간여섯 시 반입니다. 남편님 청소기 밀고 다니고나는 걸레 담당.청소 끝내고장미 삽목 네 개하고꼭 살아줘… 장미야생난리를 떨어도 아홉 시가 안 되었어요. 황토방… 따끈한 게누우면 잠들까이불 하나 빨고내 주식 빼고 다 오르는코스피 한번 둘러보고언니랑 수다 한판 떨고 나니 열시 치과 가야겠다 하고 보니빨래가 한 시간이나 걸린다네점심 먹고 시내 나가 볼 참입니다.오늘 메뉴는 생선 정식옥돔
미·중패권이니, G2니, 미헤게모니의 몰락, 팍스 아메리카나의 종언, 중국의 급부상과 몰락, 일본의 몰락, 전쟁 등 21세기에 들어오자 주변에 ‘몰락’ 이야기가 넘실댄다. 일본의 몰락, 대한민국의 붕괴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혼란스러운 시기이자,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현대 문명의 폐색(閉塞)을 예언하고 역사적 충격을 준 명저가 떠오른다. 독일의 수학자였던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책 『서양의 몰락』(1918–1922)이 그것이다. 국내에는 『서구의 몰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Chat
영화제 현장에서 사라진 감독의 이야기, 2023년 10월 9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에서 작은 사건이 터졌다.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기로 한 감독이 사라진 것이다. 사전에 전혀 공지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영화 상영 후 부대행사를 기다렸던 이들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무대에 등장해야 할 외국인 감독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고, 행사 진행을 맡을 예정이던 영화제 프로그래머만이 등장해 자초지종을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혼란은 가라앉았다. 프로그래머가 마이크를 통해 전달한 사정이 너
수채화는 물감을 짜 넣는 것에서 시작한다. 철판으로 된 팔레트에 빨강을 시작으로 주황, 노랑, 연두, 초록, 청록, 파랑, 남색, 보라, 검정의 순으로 가장 안쪽에서 시작하여 한 칸 가득 짜 넣는다.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고 말리고 나서야 물감을 쓸 수 있다. 수채화에서 빛을 표현하려면 물을 많이 섞어야 한다. 밝음을 표현하겠다고 흰색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물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투명함으로 빛이 표현된다. 눈이 시리도록 들어오는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생긴다. 어두움을 표현하겠다고 검은색을 사용하는 것은 금기다. 색
2022년 3월 3일 오전 8시 20분 나는 학교 정문에서 피켓을 들었다. 노란색과 파란색 배경 위에 ‘STOP WAR, 전쟁 멈춰!’를 쓴 피켓이다.“선생님, 뭐 하세요?”나를 마주한 아이들이 똑같이 말했다. 표정도 비슷했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이런 표정이다. 나는 퍽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비장하게 말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모르냐고 말했다. “전쟁 멈춰!” 오른손을 펼쳐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몇몇 아이들은 하이파이브를 했다. 우크라이나라는 나라가 있냐고, 언제부터 전쟁을 했냐고 묻는 아이
게으르기 쉽지 않다 아기별꽃 알람보다 먼저새소리가 들리고등을 켜기도 전햇살이 방안으로 쑥 드는가을 초입 아침바람마저 쳐들어 와얼굴을 만지작거리는데어떻게 잠을 깨지 않을 수 있겠어. 신음동 집이라면다시 자기도 쉬운데여기서는 힘들다. 빨래 툭툭 털어 널고로봇 청소할 때나는나의 즐거움을 찾아 헤맨다. 가위 들고나가부채 같은 호박잎 열 장 따고부추 한 줌 자르고빨갛게 익은 홍고추 하나초록 초록 풋고추 하나보랏빛이 좋은 가지도 하나.따다 두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꽈리고추 한 봉지.아들이 사다 둔 햄 한 봉지.계란 다섯 알.말린 곤드레 나물.
“돈 받기 위해 아이와 올라갔다는 비방 글에 대해 사과하라”8월 17일 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 회의가 열리던 날, 양아름찬꼬뮌 군은 손피켓을 들고 회의장을 찾았다. 꼬뮌은 “보이는 사람 다 붙잡고 피켓 보여주면서 인사했다”고 말했다.꼬뮌은 7월 11일, 아버지와 함께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옥탑에 올랐다. 공공운수노조 산하 노조에서 조직국장으로 활동하는 어머니의 노동권과 건강권 보장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선 아버지 곁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방학 중 체험학습으로 며칠 농성장을 비울 때 꼬뮌은 말했다.“내려가는 게 아니라 올라가는 거라구!
서울 S초 교사가 학교에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사건이 촉발되어, 교권을 보호하려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대통령실은 학생인권조례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였다.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는 교권 침해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전형적인 ‘갈라 치기’로 해석된다. 일각에서는 학교 붕괴를 말하기도 하는데, 학교 공동체의 붕괴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과거에는 지역에서 학력이 가장 높았던 직군이 교사였고, 전통적으로 존중을 받았다. 80년 대생 학부모는 대부분 대학을 나왔고, 공동체보다는 개인 속성이나 권리를 찾는 경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