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8일 한밤중이었다. 소성리 평화마당 단체 카톡방에 몇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고, 현란한 불빛으로 거리를 가득 메운 서울의 모습이었다. 서초동 대검찰청 앞은 촛불 인파 50만 명이 모여서 ‘조국수호와 검찰개혁’을 외친다는 소식이었다. 조금 후에 촛불은 1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했고, 또 마지막 순간에는 200만 명의 촛불이 서울 도심 한복판을 다 차지했다고 들뜬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나도 검찰개혁이 이뤄지길 바라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200만 촛불이 야속했다. 벌써 3년이 훌쩍 지난 일이
아침 일찍 고추밭으로 올랐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따느라 정신없이 바쁜 8월이었다. 하루 3시간만 농사일을 하겠다는 나의 각오는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날도 빨간 고추를 몇 바구니 따고 내려가려던 찰나였다. 봉정 할매(영화 ‘소성리’ 주연배우 도금연 할머니 애칭)가 나를 불러 세웠다. 땅콩 한 알을 까서 내게 맛 보여주면서 하는 말이.“안동 영감이 혼자서 땅콩을 캐놓고는 다듬고 있길래 옆에서 거들다 왔다. 어여, 땅콩이 알은 작아도 토종이라서 맛은 있더라, 이제 혼자돼서 농사짓겠나 싶어서 걱정했디만 농사지어놓은 건 수확한다고 애묵고
내 생애 첫 연극 공연이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왔다. 불법 사드가 배치된 임시 기지(이하 ‘사드 기지’) 앞에서 마지막 연극 연습을 했다. 달마산의 정기를 받아서 무탈하게 연극을 끝낼 수 있기를 바라는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천지신명님께 정성 들여 기도하듯이 마지막 점검을 했던 거다. 매일 오후 3시 30분이면 사드 기지 정문에서 평화행동을 한다. 참가자들은 군부대를 향해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각자 하고 싶은 발언과 구호를 외친다.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는 ‘사드 빼’와 ‘미군 떠나라’는 요구일 거다. 평화행동을 마치고 사람들은 마을
4월이다올해도 국가가 불법적으로 사드를 임시배치한 성주 기지에 공사가 예정되어있다. 공사는 4월이라고 이야기가 돌았지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봄이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가셨지만, ‘NO THAAD’가 적힌 롱패딩은 벗지 못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뒤늦은 꽃샘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나무는 싹을 틔웠고, 벚꽃을 피웠다. 성주 사드 기지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로 산허리에 진달래가 흐드러졌다.초록빛이 감도는 겨자색 생강나무꽃이 예뻐서 찻주전자 속에 넣어두겠다며 나뭇가지를 꺾었다. 둥굴
농사 작심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먹었다. 텃밭 가꾸기가 아니라 내 생업으로, 내 생계를 유지할 방도로 농사를 짓기로 했다. 날마다 소성리로 간다. 불법하게 임시배치 된 사드기지 앞에서 아침 평화 행동을 했다. 겨우내 사드기지로 오르는 길에 한눈팔지 않고 사드 뽑는 길을 걷겠다고 다짐하고 외쳤다. 다짐을 지키는 방법, 생계를 유지할 방법, 글 쓰면서 먹고 살 방법은 묘연했다. 농사를 짓자고 마음을 먹고 나니 한시가 바빠졌다. 이미 봄은 다가왔고, 농부들은 바쁜 걸음을 재촉해 땅을 고르고 퇴비를 뿌리고 있었다. 농사를 짓자고 마음먹고 나
4. 소성리성주에 사니까 금방 딴 참외를 먹는데 얼마나 달고 싱싱하던지! 신선하니까 맛이 좋지요. 참말로 성주 와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사드가, 사드가 들어온다카대요. 사드가 처음에는 뭔지 모르지만, 군사 무기잖아요. 사드가 들어오면 군대가 들어온다는 건데, 이 작은 시골에 무슨 군대가 들어선단 말인가 싶어서 놀랐죠. 그런데 군대도 한국군대도 아니고 사드를 운영하는 건 미국 군대라카대요. 그래서 더 놀랐죠. 그때 사드가 뭔가 싶어서 인터넷도 찾아보고 공부도 많이 했었습니다. 진짜로 어마어마한 전쟁을 일으키는
< 성주 사드기지가 위치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은 아직 투쟁 중이다.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성리 마을 앞으로 미군은 통행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해 기름 한 방울 운반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장비도 이동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그 무엇도 소성리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 소성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사람이 살아온 마을이며 평화종교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가 달마산 꼭대기에 배치된 이상 우리는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새벽녘 저절로 눈이 뜨인다. 알람은 울리지 않았다. 창밖은 깜깜하다. 시간을 가늠하지 못하고 이리 저리 뒤척거리면서 알람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갑자기 궁금해서 핸드폰을 켜보면 시계는 5시40분이다. 알람이 울릴 때까지 다시 이불속으로 푹 파묻혀버렸다.새벽 6시면 어김없이 전화기 모닝벨로 시작해서 핸드폰 알람까지 나를 번쩍 깨운다.차에 시동을 켤 때는 6시30분이다. 소성리 마을은 7시면 도착한다.소성리 마을이 가까워질 때면 경찰버스 한 대가 내려온다. 밤새 성주 사드기지를 지키면서 경계근무를 선 경찰병력이 교대를 하는가보다.소성리
황금돼지 아니, 황토돼지 해가 밝았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사람들은 달마산을 올랐다. 사드배치를 결사반대 하면서 투쟁했던 사람들이다. 붉게 타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각자의 소원은 소원대로 염원하겠지만, 우리는 모두 한 목소리로 "사드 뽑아야 평화돼지!"를 염원한다.소성리 부녀회원은 새해 아침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사람들을 위해 떡국을 끓였다. 새해 첫날을 마을회관 부엌에서 시작한다. 다시국물을 끓이는 동안 성주 사드기지로 올라가서 목청이 터지라고 소리치고 내려왔다."장병을 위한답시고 초소 반입하지 말라, 새해가 밝았으니 이제 사드
“내가 다 생각하고 있어, 이제 팔이 아파서 나도 예전처럼 많이 못해, 올해는 진짜 일을 줄여야겠어. 애들도 일 줄이라고 난리고, 올해는 메주도 예년의 절반보다 적게 할 거야. 촬영할 분량은 남겨뒀으니까 걱정마.”12월에 들어서면서 소성리의 기온은 뚝 떨어졌고, 사람들은 "NO THAAD" 가 새겨진 시커먼 롱패딩을 입기 시작했다. "NO THAAD" 롱패딩 덕분에 진밭교의 칼날 같은 추위로부터 몸을 따뜻하게 보온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사드를 뽑아내는 우리의 작업복이다.나는 하루가 멀다고 임순분 부녀회장님의 얼굴만 보면 “언제 메
"올해를 황금돼지해라고들 하더군요. 오행에 따르면 기해년은 황금이 아니라 황토돼지해가 맞지요. 황금에 눈먼 세대라서 누런 색만 보면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못 하고 황금이라고 우기면서 덤벼듭니다만, 사실 황토는 황금으로는 비길 수도 없는 생명의 원천입니다. 더욱이 기해년의 황토는 딱딱한 돌이 아니라 부드러운 흙이고, 봄, 여름의 약동하는 흙이 아니라 뜨겁던 불기운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가을의 흙이어서 화이부동하는 군자의 덕을 갖추고 있지요."- 박수규 주역 이야기15. ䷎地山謙지산겸, 기해년 새해 아침에 ‘소성리사드철회성주주민대책위’
사드 기지가 위치한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은 아직 투쟁 중이다. 사드가 배치되었다고 해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소성리 마을 앞으로 미군은 통행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해 기름 한 방울 운반할 수 없다. 사드를 운영하기 위한 장비도 이동할 수 없고,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그 무엇도 소성리 마을을 지나갈 수 없다. 소성리는 아주 오랜 세월을 거쳐서 사람이 살아온 마을이며 평화종교 원불교의 성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드가 달마산 꼭대기에 배치된 이상 우리는 단 하루도 발 뻗고 편하게 잠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