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보라!] 강대국의 무덤, 끝나지 않는 전쟁의 땅
[이 영화를 보라!] 강대국의 무덤, 끝나지 않는 전쟁의 땅
  • 김상목
  • 승인 2020.03.17 17: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로 보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 2001~2020



0_ 2001. 9. 11. ~ 2020. 2. 29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에 의해 납치된 민간 여객기를 이용한 자살테러로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성, 속칭 “펜타곤” 공격이 가해졌다. 훗날 “테러와의 전쟁”으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끝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고 있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 계기였던 진주만 습격 이후 최초이자, 북미 대륙 심장부를 공격당한 것으로는 독립 초기 영-미 전쟁 이후 최초인 이 사건에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격분했다.

알 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석권한 이슬람 극단주의 탈레반 정권의 비호 아래 산간지역에 은신해 있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알 카에다의 추방과 수장인 오사마 빈 라덴의 인도를 강경하게 요구했지만, 탈레반 정권은 이를 거부한다. 곧바로 미국은 군사적으로 개입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고 친미 정권을 수립한다. 세계는 미국의 가공할 최첨단 군사력에 경탄한다.

당시 미국 조지 부시 정부의 핵심은 훗날 ‘네오콘’이라 불리는 강경 우파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부통령 딕 체니와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등은 이 성공에 고무되어 중동의 정치 지도를 바꿔버릴 야심 찬 개입을 연달아 추진한다.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군사학에서 가장 피했으면 하는 구도가 ‘양면 전쟁’이다. 20세기의 양차 세계대전에서 이 양면 전쟁의 늪에 빠져 끝내 패배한 대표적인 예가 독일 제국이며, 유일하게 양면 전쟁을 수행해냈던 사례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었다. 소련이 무너지고 압도적인 힘의 우위와 견제세력의 공백을 깨달은 미국은 자신들에게 한계는 없다고 믿었고 양면 전쟁에 도전한다. 이미 1991년 걸프 전쟁 이후 10년간 봉쇄와 제재로 허약해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 역시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이라크에도 친미 정권을 세워 냉전 이후 균열한 중동의 질서는 미국 중심으로 기울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역사는 반복된다. 아프가니스탄은 19세기 대영제국의 무덤이었고, 미국 자신이 힘을 써 지원했던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1979~89)은 반세기 동안 힘의 균형을 이어오던 냉전의 상대방인 소련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강대국의 무덤이라면 베트남과 우열을 가리기 힘든 바로 그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은 쉽게 장악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련이 10년간의 전쟁에 지쳐 나가떨어지면서 깨달은 교훈을 미국은 무시했고, 그 결과 자기 발아래 무덤을 파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 친미 세력들로 임시정부를 수립한 미군이 곧 이라크 전쟁을 위해 이동하면서, 세력을 회복한 탈레반 정권의 잔당들은 기반이 허약한 임시정부를 공격했고,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 미국은 10여 년간 세계 경제 규모 10위권인 한국 정부 예산의 2년 치가 넘는, 1천 조 원 가까운 군비를 이라크와 아프간 양면 전쟁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승리는커녕 중동에선 IS라는 희대의 극단주의 테러집단을 낳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의 완벽한 부활을 막아내지 못했다. 그 결과가 얼마 전 마치 1973년 미군 철수 후 남베트남 정권 패망의 21세기 판 사건으로 불리는 탈레반과의 평화협정 체결이다.

 

1_ 그 시작은 창대했으니… <12 솔저스>

 

"12솔저스" 영화 포스터 이미지

네오콘의 수장 격인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소련이 무너지고 단일 군사력으로 미국은 대적할 상대가 사라졌다고 판단하여 제3세계 분쟁에 신속하게 개입할 수 있는 소수 정예화와 신속 대응을 중시하는 군사전략을 수립했다. 스트라이커 여단이나 특수부대, 무인기와 드론 같은 첨단 장비와 특수전 세력이 주목받는다.

아프가니스탄은 혹한의 고산지대로 게릴라전에 말려들면 미군의 피해가 클 것을 우려해 소수의 특수전 부대와 정보-항공지원을 통해 현지 무장세력을 동맹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수립한 미군은 탈레반 세력에 의해 밀려난 군벌 세력들의 연합체 북부 동맹을 지상군으로 삼는다. 이를 위해 9.11 테러 이후 보름 만에 몇 개의 소그룹으로 나뉜 특수부대와 정보요원들이 아프간 산악으로 잠입해 북부동맹의 군벌 지도자들을 포섭하고 회유한다. <12솔저스>(2018)는 바로 그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전형적인 미국 영웅주의로 포장한 액션 영화이다.

<12솔저스>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슈퍼 히어로 “토르”로 잘 알려진 크리스 햄스워스가 주연이다. 5만이 넘는 탈레반 군대에 맞서 북부동맹 세력을 규합해 미국의 첨단 정보자산과 공군력을 활용해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는 (아마 미국인들로서는 시간이 저기에서 딱 멈췄으면 싶을) 아프간 전쟁의 초기 상황을, 이미 미국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궁리만 하고 있던 2019년에 뒤늦게 담아낸 작품이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도 미군 특수부대의 골치를 썩이던 북부동맹의 군벌들은 탈레반을 무너뜨리고 나서 곧 자기들끼리 소련을 몰아낸 뒤 내전을 벌였듯이, 단합은커녕 세력 다툼에 들어가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해 투입된 원조를 착복하기 시작한다. 봉건영주처럼 각 지역에 할거하는 이들 군벌은 탈레반 세력을 지역별로 방어하는 데 약간의 도움이 되었지만, 미국이 바라는 민주화된 정부 수립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다. 미국인들도 이미 그 결말을 알고 있는 역사를 억지 향수로 포장한 이 영화는 흥행에도 실패하고 잊혔다.

 

2_ 뭔가 잘못되어 가는… <론 서바이버>

외세에 대한 반감과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부족주의 사회인 아프가니스탄은 단기전으로 제압하기보다 장기적으로 통치하는 게 더 힘든 지역적 특성을 갖는다. 이를 무시한 미국의 자만은 곧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2003년 ‘이라크 자유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미군 대부분이 이라크 정복전에 투입되고, 수천만 인구와 넓은 국토에 미군은 소수만 남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국제안보지원군, “ISAF”(International Security Assistance Force)가 결성되고 미국 외의 여러 동맹국의 병력이 지역별로 주둔하게 된다.

그러나 광대한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다수 민족인 파슈툰족 기반을 가진 탈레반은 인접국 파키스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력을 회복하고, 알 카에다의 뒤를 이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이 중앙아시아와 중동에서 몰려들기 시작한다. 이라크 역시 점령 직후 곧바로 게릴라전이 시작되고, 아프간의 미군은 다른 동맹군 대부분이 적극적 공세보다는 기지와 주변 지역 방어에만 몰두하면서 소규모의 특수작전 위주로 지루한 싸움을 이어나간다. <론 서바이버>(2013)는 그런 상황에서 점점 늘어나는 전상자로 골머리를 썩이는 미국의 고뇌와 사건·사고들을 실제 사건에 기반을 두고 극화한 작품이다.

 

"론 서바이버" 영화 포스터 이미지

‘레드윙 작전’이라는 탈레반 요인 체포 작전의 선발대로 투입된 네이비씰 정찰팀이 산골에서 아프간 양치기 소년과 접촉한다. 보안 유지와 민간인 보호 사이에서 갈등하던 특수부대는 투표로 양치기 소년을 살려서 보내지만, 곧 탈레반의 공격으로 하나둘 죽고 1명만 살아남는다. 그런 그를 산골 마을 촌장이 구출하고 (탈레반의 기반인) 파슈툰족의 윤리관으로 피난처를 제공한다. 탈레반은 마을을 위협하지만, 이방인을 보호하려는 마을 민병대는 탈레반에 대항하고 미군 구출 부대가 도착해 큰 피해 속에서 구출 작전이 진행되는 이야기이다. 이 작전은 구출을 위해 출동한 특수부대 헬기가 추락해 단일 작전에서 미국 특수부대 인명 피해 역대 2번째의 희생을 낳았다. (일반 지상군과 특수전 병력은 육성 기간과 비용에서 높은 장벽의 차이가 있다) 비밀유지를 위해 민간인을 희생시키고 물적 보상으로 입을 막는 미군 ‘관행’과 사뭇 달랐던, 정찰팀의 윤리적 판단은 국내에도 잘 알려진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도 사례로 인용되기도 했다.

레드윙 작전은 희생 끝에 실패로 끝났고, 미군 생존자를 구해낸 마을 촌장은 결국 탈레반의 위협 때문에 외국으로 피신해야 했다는 후일담을 남긴 <론 서바이버>는 영화 속 할리우드 방식의 미화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윤리적 쟁점과 함께 점차 꼬여가는 아프간 전쟁 상황을 소개하는 작품이다.

 

3_ 승리의 백일몽은 안갯속으로… <워 머신>

아프가니스탄은 한반도 전체의 3배 면적에, 4천만에 가까운 인구를 가진 작지 않은 규모인 데다 앞서 언급했듯 애당초 미군을 환영하는 편도 아니었다. 적대적인 민간인을 통제하기 위해선 2%의 무장력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80만은커녕 미국 주도의 ISAF는 한동안 5만 명 남짓한 수준에 머물렀고 아프간 정부군 역시 몇만을 넘지 않았다. 그나마 정부군으로의 군사력 집중을 위해 북부 동맹의 군벌 세력을 약화해야 했는데, 탈레반은 곧바로 세력을 회복해 북부 동맹의 기존 세력 기반과 수도 카불을 제외하고 각지에서 기세를 떨친다.

특히, 파키스탄과의 국경지대는 거의 탈레반의 지배에 들어간 상황. 이라크와 아프간 어느 한 곳에서도 미국은 완전한 승리에 도달하지 못한다. 2009년이 되자 미군은 작전을 바꿔 군사적 제압보다 민사작전에 주력해 탈레반으로부터 주민을 분리하려 뒤늦게 시도한다. 그리고 이라크에서 알 카에다 작전에 성과를 낸 신임 ISAF 사령관이 도착한다. 영화 <워 머신>(2017)의 시작이다. 브래드 피트가 실제 주인공 스탠리 매크리스털 대장 역을 연기한다.

 

"워 머신" 영화 포스터 이미지

스탠리 매크리스털 대장은 모범적인 군인이다. 4성 장군으로 50대 중반에 아프간에 부임했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한 그는 매일 아침 16킬로미터를 구보하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며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활을 한다. 특수부대 훈련을 소화하고 현지 장병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려 노력한다.

하지만 철두철미한 군인인 그 앞에 놓인 현실은 너무나 복잡하고 불투명하다. 오바마 대통령과 행정부는 인명 피해가 증가할 추가 파병 생각이 없고, 명색이 동맹군들인데 다들 기지 밖으로 나올 생각이 없이 움츠리고 있다. 아프간 임시정부는 엉망진창이고 정부군은 그들을 훈련시키는 미군조차 신용하지 않는다. 양면 전쟁으로 병력이 부족해진 미군은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빈민 소년들을 대거 모병했고, 생전 처음 해외로 나온 게 아프간 전쟁터인 어린 해병대 병사들은 전쟁의 광기 속에 무너져간다.

대통령과 힘겨루기 끝에 추가 파병을 얻어내고, 탈레반 핵심지역을 석권해 지루한 전쟁 상황을 일거에 뒤엎으려던 매크리스털 장군의 계획은 갖은 준비와 계획에도 불구하고 민간인과 미군 피해만 낳고 실패한다. 대민지원이나 사기진작에 장군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수십 년간 전쟁에 지친 아프간 주민들에게 미군은 그저 언젠가 떠날 외국 군대에 불과했으니, 이 땅에 남을 탈레반과 미군 중 어느 쪽 눈치를 볼지는 자명한 일이었다.

결국, 작전 실패로 씁쓸하게 해임된 장군은 열패감 속에서 전역하고 민간 컨설팅 회사로 전직한다. 미국의 대의와 힘을 믿었던 모범적인 장군은 결국 동맹국 순방 중 유럽 기자가 질문했던 과시적인 자기 확신과 오만에 속박되어 있었던 셈이다. 물론 매크리스털은 영화 속에서나 실제 인물로나 그 지적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넷플릭스가 제작한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의 과장된 연기로 블랙코미디처럼 흘러간다. 영화 속 잡지 기자의 실제 취재를 바탕으로 극화된 것으로, 마치 고전 명작 <지옥의 묵시록>에서 모두가 베트남 정글 속에서 광기에 미쳐가듯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중반기 상황을 풍자하고 있다.

정치가들은 벌여놓은 일을 어떻게 자기 임기 내에 더 악화시키지 않고 떠넘기냐만 집착하고, 군인들은 전쟁의 복잡다단한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며, 동맹국들은 그저 얼른 명분만 챙겨 이 지옥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중이다. 그 속에서 미군들은 이유를 모르는 외국 전장에서 이성을 잃어 가고, 민간인들은 그저 얼른 전쟁이 끝나기만 기다리며, 아프간 정부는 미국의 주요 작전을 제대로 통보받지도 못하고 요구할 의지도 없다. 그런 난맥상을 <워 머신>은 미국의 혼란한 시선으로 담아낸 기괴한 풍경화 같은 작품이다.


4_ 전쟁의 공포, 공포 <레스트레포> & <아르마딜로>

 

"레스트레포" 영화 포스터 이미지

결국, 매크리스털 장군은 아프간 전쟁의 수렁을 구원하지 못했고 전쟁은 지루하게 계속된다. 양면 전쟁에서 2000년대 초반은 이라크가 더 시급한 지경이었고, 미국과 동맹국의 전력은 이라크에 집중된다. 그 결과 <워 머신> 영화 속에서 미국 정부 인사들이 언급하듯 더 나빠지지만 않게 별일 없는 것처럼 현상만 유지하는 상황이 아프간에선 계속된다. <레스트레포>(2010)과 <아르마딜로>(2010)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그런 와중에 각각 등장해 전쟁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2010년 <레스트레포>는 미국 쪽, <아르마딜로>는 유럽 쪽 다큐 영화제를 석권했다.)

<레스트레포>는 미국의 두 기자가 아프간 산악지대의 소규모 미군 정찰 기지 주둔 병력과 동고동락하며 전쟁의 일상을 최대한 가감 없이 담아내 한 저널리즘 다큐에 속한다. 그해 미국 영화상 다큐 부문을 휩쓸다시피 한 이 작품은 아주 단순한 구성이다. 실제 군인들의 인터뷰와 최전선 기지의 일상이 연속적으로 반복된다. 하지만 그 이전엔 통제되거나 제대로 끄집어내지 못하던 전장의 현장감이 고스란히 이 작품에선 드러난다.

탈레반 세력이 출몰하는 산악지대 제어를 위해 설치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고지대 주둔부대에서 초반에 전사한 병사의 이름을 따 전초기지를 세웠지만, 기지의 일상은 ‘신나는’ 반격이나 전술적 가치라곤 느껴지지 않는 무미건조함과 두려움의 반복일 뿐이다. 제대로 말도 통하지 않고, 적대적이거나 무신경한 산골 주민들과 교류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 그 지역을 꿰뚫어 보는 탈레반은 수시로 노출된 레스트레포 기지에 공격을 일삼고 사라진다. 차라리 한바탕 결전을 치러 소탕해버리고 싶어도 적들은 그럴 의도가 없다. 철조망에 걸린 소를 안락사시킨 뒤 바비큐 파티를 열었더니 마을 주민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흥정을 하려 들고, 미군에게서 이득은 취하면서도 도움은 주지 않는 민간인들과의 불신은 커져만 간다. 결국, 50명의 인명 피해만 남긴 채 코렝갈 산악지역에서 레스트레포 기지는 철수했다는 담담한 마무리가 허무함을 진하게 남긴다.

<아르마딜로>는 <워 머신>에서 매크리스털 장군을 속 썩이던 한 축, ISAF의 유럽 동맹군인 덴마크 참전 병력의 일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대적으로 덴마크 등 북유럽 참전 군대는 전투력이 높다고 평가되었지만, 소규모 병력의 한계로 그저 각자가 맡은 구역 경계도 힘에 부치는 실정이었다. 이 영화 제목 역시 전초기지 명을 그대로 옮겼다. 아르마딜로 기지에 파병된 덴마크 군인들은 6개월간의 임무에 들어간다. 이들은 미군처럼 화끈한 공세 작전에 동원되지 않으며 영화는 그저 이들의 경계근무와 순찰의 반복이다. 하지만 실제로 거의 무력충돌이 벌어지지 않는 휴전선 비무장지대와 비교하면, 이들 덴마크 군인들은 통 속을 알 수 없는 아프간 민간인들의 무관심하고 적대적인 시선과 함께, 형체는 보이지 않은 채 총격이나 폭발물로 공격하는 탈레반 세력들에 포위된 것처럼 보인다.

 

"아르마딜로" 영화 포스터 이미지

탈레반이 그림자 정부처럼 지배력을 떨치는 전선이다 보니 민간인들은 아르마딜로 기지의 외국군은 철수하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이며 물질적인 이익 외에는 접촉이나 관계를 맺기를 거부한다. 소수의 덴마크 병사들은 마치 아마존이나 아프리카 정글에서 길을 잃고 미쳐가던 중세-근대의 실패한 모험가들을 연상케 할 정도로 보기 딱할 만큼 피폐해져 간다. 전쟁영화라면 혹시 기대할 격전 한번 나오지 않지만, 화면 속 병사들의 넋을 잃고 망가져 가는 참담한 풍경이 스크린 밖으로 기어 나오는 작품이다.


5_ 자멸과 공허… <킬 팀>과 <제로 다크 서티> 속 무너지는 미국

아프간 전쟁의 배경과 맥락과 유리된 채, 명분도 없고 탈출구도 보이지 않는 고립된 전쟁에 내몰린 미군들은 점차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게 된다. 과거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은 전쟁 중반으로 가면서 마약에 빠지거나 상관살해(‘프래깅’)가 급증했다. 이 후과로 현재도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에 진을 빼고 있고 모병제로 전환한 상황이다.

하지만 양면 전쟁이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모병 자원은 급감하고, 그 결과 시민권을 조건으로 가난한 이민자를 병력 자원으로 충당하거나 빈민들에게 복지혜택을 미끼로 조기 입대시키는 사례가 급증한다. 10대 소년들에게 살인 기술만 가르쳐 마치 소년병처럼 적과 아군이 모호한 아프간 전장에 뿌려놓으니 사고가 안 터질 수가. <킬 팀>(2013)은 바로 그런 병영 부조리 사건의 진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다.

 

"킬 팀" 영화 포스터 이미지
△ 영화 킬팀 포스터

끔찍하게도 이 영화에 담긴 내용은 실제로 2010년 아프간 민간인들을 비밀리에 학살하는 병사 조직 ‘킬 팀’의 일화다. 전쟁의 광기에 물든 어린 병사들이 패거리를 만들어 밤에 몰래 민간인을 죽이고, 가담하지 않는 하급자를 강제로 공범으로 만들어 미국 내에서 큰 충격을 낳았던 사건이다.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이후에도 유사 사건이 계속 이어졌다는 점이다. 사조직에 의해서 건, ‘외로운 늑대’에 의해서 건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미군들이 어린이까지 장난처럼 살해하는 사례가 거듭되었다. 전역 후에도 참전 군인들이 사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노숙자가 되거나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음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제로 다크 서티>(2012)의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는 선 굵은 액션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여성 감독이다. 이미 이웃 전쟁터인 이라크에서도 미군 피해의 대다수를 이루는 사제 폭발물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제거부대의 일상을 담은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로 아카데미를 석권했던 감독은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출발로 돌아간다. 바로 오바마 정부 당시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이라는 이름으로 2011년에 실행된 오사마 빈 라덴 암살 작전이다. 미국은 10년 만에 알 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는 데 성공한다. 영화는 10년간 신출귀몰하며 숨어 지내던 빈 라덴의 은신처를 추적하는 CIA 여성 정보요원을 중심으로 다룬다.

탈레반이 빈 라덴을 아프간에 숨겨주고 있다 해서 전쟁을 시작했는데, 정작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그는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바마드 근처의 주택에서 은신하고 있었다. 탈레반은 애초에 파키스탄 군부와 정보부의 지원 아래 탄생한 조직이었고, 아프가니스탄의 다수 종족이자 파키스탄에서도 적지 않은 세력을 가진 파슈툰족과 척을 지고 싶지 않은 파키스탄 정부의 일각에선 오히려 빈 라덴을 보호하는 행태를 보였다.

빈 라덴의 행선지가 미심쩍었지만, 겉으로는 동맹관계인 미국-파키스탄 사이에서 보안과 신중함이 요구되었고, CIA의 여성 요원 팀이 끈질기게 빈 라덴을 추적한다. 치밀한 첩보전 와중에 주인공의 동료가 거짓 정보에 속아 폭탄 테러에 희생당하고 주인공은 집착적으로 빈 라덴을 추적한다. 마침내 동맹국인 파키스탄 정부에 알리지도 않고 국경을 넘어 미국 특수부대가 빈 라덴을 암살하는 데 성공하고, 미국은 환호한다. 하지만 작전이 끝나고 주인공은 허무한 표정으로 울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전쟁은 계속되었다.

 

"제로 다크 서티" 영화 포스터 이미지

6_ 끝나지 않는 전쟁의 땅 아프가니스탄

 

빈 라덴은 2011년에 비명에 갔지만 알 카에다와 탈레반은 건재하며, 알 카에다의 이라크-시리아 지부가 분리되어 최악의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했으니 바로 속칭 ‘IS’의 출현이다. 1980~1990년대 미국이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리스트라 적대하던 이란 시아파 정권이나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상대적으로 현실적이고 대화가 통하는 세력으로 비칠 만큼, 2001년 미국이 주도해 시작한 테러와의 전쟁은 헤어날 수 없는 무저갱(無底坑)으로 끌려들어 가는 양상이다.

이라크와 시리아, 예멘과 리비아에선 내전이 그치지 않고, 비교적 세속적이고 극단주의 세력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던 이집트나 터키의 독재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는 여전히 해결의 기미가 요원하고, 이란과 미국의 핵 합의는 미국이 먼저 판을 엎어버리는 형국이다. 이 와중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은 탈출을 꾀하고 있다. 물론 문제가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그저 1973년 베트남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1989년에 소련이 철수하는 것과 진배없는 상황이다. 명분만 있다면 미국 역사상 가장 오래 지속된 출구 없는 전쟁에서 탈출하고픈 욕망 외에 다른 이유가 없어 보인다.

아프가니스탄 임시정부는 여전히 기반이 취약하고 수도 등 도시 지역 일부만 겨우 장악하고 있지만, 미군이 철수하면 풍전등화로 보인다. 심지어 2월 29일 평화협정의 당사자는 미국 정부와 탈레반 세력이며 공식적으로는 아프간의 합법 정부임에도 탈레반도 미국도 현 정부를 무시하는 모양새이니. 미국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통치하더라도 알 카에다나 IS를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용인할 것으로 다들 받아들이고 있다.

그저 외세를 물리치면 족하다고 볼 것인가. 물론 과거의 북부동맹으로 파슈툰 족 외의 여러 소수민족 군벌들이 규합되어 일정 지역에서 할거할 예정이니, 영국과 소련이 물러나자마자 다시 내전이 시작될 게 뻔하다. 수십 년간의 전쟁 와중에 아프가니스탄은 황폐해지고 이슬람 근본주의가 극단화되면서 관용과 자유는 사라진 채 중세적 신정국가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시행착오나 한계는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한 베트남(프랑스-미국-중국과 차례로 전쟁을 치러 승리한)의 전후 과정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난국인 셈이다.

강대국이 자기들만이 옳다는 오만과 약소국에 대한 강압으로 저질러놓은 분탕질은 괴물을 낳았고, 그 책임은 온전히 전 세계의 몫으로 남아버렸다. 탈레반이 곧 다시 차지할 아프가니스탄 바로 옆, 탈레반의 기원이자 국토의 절반을 장악한 파키스탄에는 핵무기가 잔뜩 쌓여 있다. 미국이 사고 치고 떠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다.

 

작품 정보


12 솔저스 12 Strong

미국, 액션·전쟁·드라마, 2018

2018.01.31. 개봉, 130분, 15세 관람가

감독 니콜라이 퓰시

주연 크리스 헴스워스, 마이클 섀넌, 마이클 페나, 트레반트 로즈


론 서바이버 Lone Survivor

미국, 액션·드라마, 2013

2014.04.02. 개봉, 121분, 15세 관람가

감독 피터 버그

주연 마크 월버그, 테일러 키취, 벤 포스터, 에밀 허쉬, 에릭 바나


워 머신 War Machine

미국, 코미디·드라마·전쟁, 2017

넷플릭스, 121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데이비드 미쇼

주연 브래드 피트, 존 마가로


레스트레포 Restrepo

미국, 다큐멘터리·전쟁, 2010

국내미개봉, 93분, 15세 관람가

감독 팀 헤더링턴, 세바스찬 융거

26회 선댄스영화제(2010) 심사위원대상-미국 다큐멘터리)

82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0) 다큐멘터리 톱5, 신인감독상


아르마딜로 Armadillo

덴마크, 다큐멘터리·전쟁, 2010

2012.04.26. 개봉, 108분, 15세 관람가

감독 야누스 메츠

주연 다니엘 웰비, 매드 미니

35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0) 초청(리얼 투 릴)

3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2011) 초청(글로벌 비전)


킬 팀 The Kill Team

미국, 다큐멘터리, 2013, 넷플릭스, 79분

감독 댄 크라우스

12회 트라이베카영화제(2013) 작품상-국제다큐멘터리경쟁

86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4) 다큐멘터리 톱 5

30회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2015) 트루어 댄 픽션상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미국, 액션·드라마, 2012

2013.03.07. 개봉, 157분, 15세 관람가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주연 제시카 차스테인, 제이슨 클락, 조엘 에저튼, 카일 챈들러

78회 뉴욕비평가협회상(2012) 촬영상, 감독상, 작품상

33회 보스턴비평가협회상(2012) 편집상, 감독상, 작품상

38회 LA비평가협회상(2012) 편집상

11회 워싱턴비평가협회상(2012)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17회 새틀라이트시상식(2013) 각본상

25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2012) 편집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84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2) 작품상, 여우주연상, 감독상

18회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2012) 편집상, 여우주연상

70회 골든글로브시상식(2013) 여우주연상 - 드라마

65회 미국작가조합상(2013) 각본상

85회 아카데미시상식(2013) 음향편집상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