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사랑이라는 저항
[칼럼] 사랑이라는 저항
  • 김혜나
  • 승인 2020.10.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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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석을 맞아 평소에도 이미 만연하던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욱 활개를 쳤다. 명절을 늘 따라다니던 가족갈등과 스트레스는 위선적 포장의 내부를 들추는 역할을 해왔는데, 전염병 상황은 이마저도 ‘합법적으로’ 피해 갈 수 있는 명분을 주었다. 가족에 최우선의 가치를 부여하는 오랜 전통과 체화된 문화는 지적,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제1원칙이다. 가족이라는 성역 앞에서는 모두가 비슷한 꼴이 된다.

사회적 성공을 향한 기나긴 행렬의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몫을 차지하지만, 부와 권력을 얻으려는 근본적 이유이자 목적이 가족이라는 점에서는 전혀 다르지 않다. 규모와 수준에 차이가 있을 뿐 ‘부모의 마음’, ‘자식 된 도리’로 자행되는 사적 이익의 추구는 정상적이다 못해 칭송받는 삶의 방식이다. 유명인들의 자녀 문제에 관한 분노는 공유된 목적, 이를 쟁취하기 위한 수단 상의 격차, 그로 인한 사익 침해의 인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정’이라는 명분이 공적 가치와는 무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가족이 ‘반사회적’이면서도 자본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가장 ‘사회적인’ 기본단위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상적인 가족 체제로 여겨지는 일부일처제는 역사적으로 한 사람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이나 고상한 윤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명확히 자신의 유전적 자식으로 확인되는 이에게 재산을 물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엥겔스의 통찰이 보여주듯 가족과 사유재산, 그리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의 기원은 서로 얽혀있다. 이 세 가지 발명품은 인간과 자연에 울타리를 치고 사유화(enclosure)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러한 본질은 사랑이나 도덕과 같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태어나면서부터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가치로 둔갑해 감추어진다. 소유와 독점의 울타리 속에서 모든 것을 사적으로 해결할 것을 요구하는 사회는 ‘불효자’나 ‘못난 부모’라는 죄인들을 양산하고, 이들의 충성스러운 죄책감은 현실을 참고 견디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고정되고 경직된 가족 체제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은 일대일의 독점적 이성애 관계와 이를 토대로 한 정상 가족의 형태를 거부하거나, 관습을 벗어난 ‘개방적인’ 성행위를 지향하는 것이다. 오늘날 허용된 다른 모든 ‘선택의 자유’와 마찬가지로 이 역시 소비의 자유라는 자본주의적 문법으로 흡수되기 쉽다. 타자에 의한 실존적 균열의 가능성은 차단되고 위험 없는 나르시시즘만이 추구된다. 한 명이냐 여러 명이냐와 같은 형식과 방법의 문제가 관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압도한다. 연애에 관한 관심과 이야기들이 과잉 상태에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사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의 ‘자유로운 사랑’은 자유롭지도 않고, 사랑도 아니며, 그러므로 체제에 전혀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 개인 사이의 관계를 넘어 사회와 자연의 맥락 속에서 사랑을 생각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다.

전방위적으로 포위된 사랑의 현실은 진정한 사랑 속에 끓어넘치는 혁명적 가능성을 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사랑은 자발적 자기 죽음을 가능하게 하는 타자의 선물(한병철)이며, 그러므로 ‘사랑에 빠지기, 그것은 곧 혁명’(스레츠코 호르바트)이다. 사랑의 회복 없이는 다른 세계도 없다.



글_ 김혜나 대구대학교 연구중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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