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리를 쓰다4] 저항과 모욕을 기록하기
[소성리를 쓰다4] 저항과 모욕을 기록하기
  • 기록노동자 시야
  • 승인 2021.08.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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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정기적이고 지속해서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오면서 국가폭력을 당해 분노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새벽까지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고,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와서 화끈거린다. 6월 10일은 소성리로 12번째 경찰 침탈이 있었다. 경찰버스 50여 대가 소성리로 들어왔다. 1000여 명의 경찰병력이 타고 있는 버스다. 늘 하던 대로 하면 6시 50분에 작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작전은 조금 시간을 끄는 듯한 모습이었다.

집회를 시작하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사복 입은 경찰이 집회 장소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도로 한가운데서 기지개를 켜고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우리 할머니들의 눈에 거슬렸다. “남의 염장 지를 일 있나 와 남의 마을 도로에서 우리 눈앞에서 저러고 있냐”고 원성의 목소리가 커졌다.

성주경찰서 서장이 직접 경찰병력의 줄을 세우고 위아래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움직였다. 7시가 넘도록 경찰 진압이 바로 들어오지 않았지만, 경찰의 경고방송이 들려왔다. 알아듣지도 못할 법 조항을 나열해가면서, 마치 우리가 대단한 범법자라도 된 듯이 성주경찰서장의 위임을 받아 교통경비계장이 지껄여댔다. 자진 해산하지 않으면 무력을 행사해서 해산시키겠다는 협박을 방송으로 수시로 한 셈이다.

경찰 진압이 들어오는 시각에 내 옆에 앉은 금은점 님이 언론 기사를 찾아봤지만,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와서 충돌이 예상된다는 기사는 하나도 검색되지 않았다고 했다. 6·10민주 항쟁 34주년이 되는 날 새벽이지만, 소성리는 민주화는커녕 야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도 기사 한 줄 없이 어느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고립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다고 연대자가 없는 건 아니었다. 숫자가 많지 않았지만, 진보당 부산, 울산, 경북 분들과 사회진보연대활동가들 그리고 울산의 여성회 분들이 새벽 3시에 출발해서 소성리로 오셨다는 말씀은 가슴 뭉클했다.

연일 자행되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추행 문제가 계속 회자되어서인지, 오늘 경찰들은 담요를 준비해 왔고, 진압 들어와서도 즉시 끌어내지 않는 거로 보였지만, 내 뒤에서 사람들이 끌려나가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은점 님과 팔짱을 꼭 끼고 있을 때, 경찰들은 은점 님을 끌어내기 위해서 나를 떼어내려고 했는데, 내 뒤에 여자 경찰이 내 골반을 발로 차는 느낌이 들어서 나도 그의 손목을 잡고 왜 나를 차냐고 물었다. 허리가 불편해서 뒤돌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손목을 잡아서 그를 내 앞으로 끌어당기려고 했었다. 그러면서 은점 님은 떨어져서 경찰들에게 들려 나갔고,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내게 손목이 잡힌 경찰이 양손으로 내 가슴을 꽉 조였다.

뒤에서 백허그 하지 말라고 그의 손을 쥐었다. 경찰 여럿이 나를 들어 나르려고 할 때 남자 경찰이 ‘허리 아픈 사람’이라며 마치 안전하게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내 가슴을 끌어안은 여자 경찰은 양손에 힘을 꽉 주고 내 가슴을 꽉 조여서 압박했고, 나는 숨쉬기 힘들다고 가슴에서 손 떼라고 소리를 질렀다.

여자 경찰들이 덩치는 작고 연약해 보일지 몰라도 훈련받은 유단자들이라서 손목의 힘이 야무지고, 여럿이 달려들어서 제압을 해버리기 때문에 내가 덩치가 크고 악다구니를 쓴다고 해도 그들을 이길 재간은 없다. 김태령 님이 백허그를 당하면 숨을 못 쉬겠다고 한 말이 뭔지, 그게 사람을 제압하는 방법이었다는 걸 체험한 셈이다.

마지막까지 할머니들이 도로에서 나오지 않자 대화 경찰이 할머니들에게 달라붙어 일어나서 나가자고 설득하고 있을 때, 누군가 ‘경찰서장이 업어주면 나가겠다’고 하자 주변에 서 있던 성주경찰서장이 바로 할머니들 곁으로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장이 계속 시계를 훔쳐보는 모습을 보고는 유련 님이 왜 시계를 쉴 새 없이 쳐다보냐고 핀잔을 주자 서장이 흘겨보더라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작전타임이 7시 30분이니까 그전에 도로를 말끔히 비워야 했겠지.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결국 우리가 다 끌려 나와서 마을회관에서 감금상태로 놓이게 되자 도로는 뚫렸다. 7시 39분에 트럭과 공사 인부를 실은 승용차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용수 차량, 기다란 트레일러 등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침 사드기지 건설 저지 투쟁을 한차례하고 나서 마무리 집회를 했다. 어젯밤 늦게 부산 신라대에서 밥 연대를 하고 소성리로 달려와 준 ‘십시일반밥묵차’의 유희 님과 밥묵차 식구들이 아침밥을 정성스레 준비해 주셨다.

아침 일찍 사드-미군기지로 공사 인부들은 오후 4시가 되면 작업을 마친다고 한다. 공사 인부들을 안전하게 귀가시키면 경찰들의 임무도 끝나는 거라서 퇴근을 서두른다. 사드기지로 오후 4시에 올라가던 평화행동은 경찰들에게 길이 가로막혀 올라갈 수 없어서 개신교기도소와 소성리책방 앞 도로 건널목에서 오후 평화행동을 한다.

도로를 점거하고 싸우는 건 소성리 마을에 남은 할머니 주민 몇몇과 원불교 교무님, ‘예수살기’ 장로님 그리고 몇 명 되지 않는 평화지킴이들 뿐이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다만, 할머니들이 건널목을 건넜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면서 공사 차량이나 경찰버스가 통행하는 데 불편을 주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경찰들도 소성리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잘 파악하고 있을 테니 별 긴장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고, 대화경찰 여럿이 할머니들을 에워싸고는 도로를 건널 때마다, 버스를 보내기 위해서 몸으로 가로막고,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때 SUV 차량에 ‘출입허가 차량’이란 표지판이 붙어있는 공사 인부를 태운 차량이 내려왔다. 소성리 부녀회장님이 소성리 마을 도로로 공사 인부들은 다니지 말라고 항의하면서 차량을 막았다. 경찰이 에워싸서 부녀회장님을 끌어내려고 하자, 부녀회장님은 도로에 드러누웠다.

페이스북 라이브를 찍던 형선 교무님이 공사 인부를 태운 차량에 소성리 도로를 이용하지 말라고 항의하자, 남자 경찰이 제지하려고 들었고, 서장의 비서가 나타나서는 여자 경찰들에게 “밀어내”라고 지시했다. 여자 경찰들은 형선 교무와 나를 길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나는 카메라로 촬영하는 중이었다. 여자 경찰들은 몸으로 우리를 밀어내면서 카메라를 치우라는 듯 손으로 쳤다. 왜 카메라를 치느냐고 내가 항의하자, 대화경찰이란 자가 끼어들어 나를 말렸다.

여자 경찰들 뒤에, 내 허벅다리에 주저앉아서 내 허리를 못 쓰게 만든 단발머리 여자 경찰이 서 있는 모습을 보고는 “당신 나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냐”하고 따졌다. 허벅다리에 주저앉은 여자 경찰도, 내 카메라를 친 여자 경찰도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대화경찰이 나를 붙잡고 있는 데다 경찰병력들이 여자 경찰들을 뒤로 빼돌렸으니 인신이 감금된 나는 자유롭게 할 말을 하고 따질 수가 없었다.

참, 말이 쉬워 참으라는 거지, 경찰이 가해자 잡을 생각은 하지 않고, 피해자에게 참으라고만 한다. 경찰이, 최소한 경찰복 입고 할 말은 아니지 않은가. 어처구니없는 일이 하루 이틀 있던 건 아니지만,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 안 하고 넘어갈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한쪽 가장자리에 몰려서 갇혔고, 교무님과 장로님은 건너편에서 또 경찰들에게 가로막혀 있었다. 원래 사드기지로 드나드는 차량 중 미군 통행 차량과 유류 반입 차량 등 몇 가지는 소성리로 다닐 수 없다는 것이 그간의 암묵적인 합의였는데, 경찰병력을 동원해 아침저녁으로 마음대로 다니려고 하니까 당연히 소성리 주민들은 마을길을 함부로 이용하지 말라고 항의할 수밖에 없다. 

소성리는 시작도 끝도 아닌 진행형이다. 언제까지 가는지 알 수 없는 진행형이다. 한국 정부는 올해 말까지 사드-미군기지로 통하는 길을 열겠다고 이야기를 흘리고 있다. 그러면 올 한 해 동안 아니 우리가 마을길을 포기하지 않는 한 언제가 될지 알 수 없고, 소성리 주민들과 평화지킴이들은 경찰들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당해야 할 위험에 처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경찰병력을 동원해서 소성리를 짓밟고 사드기지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차곡차곡 밟아나간다.

할머니들은 점점 늙어가고 있다. 기력이 쇠해지는 게 눈에 보인다. 12번의 경찰 침탈을 받는 동안 소성리로 달려와서 마을길을 지켰던 평화지킴이들은 경찰폭력에 팔과 다리, 허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성적 모욕감에 치를 떨었다. 나는 그들과 정식으로 인터뷰를 하지는 못했지만, 상황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목소리를 메모해 두었다.

나만 하더라도 6월 8일 집회 도중에 경찰이 진압을 시작하자, 허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알렸고, 우리 중에 아픈 사람이 있으니까 강압적으로 끌고 나오면 안 된다고 경찰들을 제지했지만, 경찰들은 내 옆에 앉은 사람을 끌고 나가려고 용을 쓰다가 단발머리 여자 경찰이 내 왼쪽 허벅다리에 주저앉아버렸고, 순간 나는 눈앞이 아찔했다. 다리에 쥐가 나고 골반이 빠지는 통증을 느꼈다.

여자 경찰들에게 들려 나오는데 내 웃통이 훌러덩 벗겨져서, 아픈 와중에도 뱃살이 다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서 손으로 웃옷을 끌어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양팔이 붙잡혀있어서 웃옷을 내려달라고 여자 경찰에게 말해도 그들은 못 들은 척하고는 무조건 나를 들고 바깥으로 뱅뱅 돌면서 이동시킬 생각밖에 없었다.

경찰병력이 소성리로 들어와 집회 참가자들을 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여성들뿐 아니라 남성들도 웃통이 벗겨져 속살이 훤하게 다 드러나는 일을 계속 겪고 있었다. 어느 남성은 바지가 벗겨질 뻔했고, 어느 여성은 브래지어가 다 보일 정도로 벗겨졌지만, 경찰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빨리빨리’ 끌어내기에 바빴다.

 

사진=소성리종합상황실

한 사람의 여성을 끌어내기 위해 여자 경찰이 최소 4명 이상 7명까지도 달라붙어서 들고 나르는데, 왜 옷이 벗겨져도 신경 쓰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이 상황을 일부러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들었다. 집회 참가자들에게 모욕을 주려는 게 아닌가. 저항하지 못하게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A : “나도 끌려 나올 때, 야들이 바지를 끌어내려서 팬티가 밑으로 내려가, 그거 올리느라고 저항도 제대로 못 했어”

B : “오늘 남자 청년이 끌려 나오는데 팬티가 벗겨져서 엉덩이가 다 보였어. 그런데도 경찰들은 옷을 올려줄 생각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끌고 나오는 거 있지.”

C : “(여경들에게 끌려 나오면서) 배와 허리가 다 드러났어요. 그러니 저항을 못 하겠더라구요. 맨살을 가려야 하니까요. 지난번엔 여자 경찰이 백허그를 해서 제 가슴을 만졌어요. 성추행이라고 소릴 질렀죠. 저도 피해자입니다. 기분이 안 좋아요.”

D : “여자 경찰이 귀에 대고 작작 좀 하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말하지 말라고 했더니 손바닥으로 안경을 눌러버리는 거 있죠. 여자 경찰 이름이 김다슬이었어요.”

E : “할머니들 억울한 마음, 감히 교무님 끌어내는 그런 모습 앞에서 우리 같은 조그만 사람들은 차마 말을 못 해요.”

F : “창피해서 말을 못 했는데, 28일 격자에서 나올 때, 여경들이 내 바지를 잡고 위로 끌어올려서 중요한 부위가 상처가 났어요. 오늘도 여자 경찰이 뒤에서 백허그를 해서 내 가슴을 으스러지도록 꽉 조였는데, 그 노래가 생각나더라구요. 가슴이 으스러지도록 안아달라고 했던가… 참나.”

G : “내가 알아서 나가겠다고 내 몸에 손대지 말라고 하는데도, 나를 붙잡더니 뒤에 한 여자 경찰이 내 엉덩이를 꾹 잡는 거예요.”

H : “여자 경찰들에게 들려 나오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 웃통이 위로 말려서 배가 다 드러나 있더라구요. 브라도 반쯤 보였던 거 같아요.”

I : “여자 경찰들이 내 팔을 잡더니 아픈 팔인데 그걸 비틀어버린 거야. 그럼 어떻게 되겠어. 팔에 힘이 하나도 없어. ”

 

열두 번의 경찰 침탈을 당하는 동안 소성리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찰폭력을 당하고 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다. 경찰 공권력을 상대로 고소하려고 해도 물증이 없어 다른 방법을 취하지 못한 채 현장의 원성을 적어두고만 있었다.

 

 

글 / 기록노동자 시야

소성리 사드-미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성주 주민이고, 노동자 편드는 글을 쓰고 싶어서 인터뷰하고 기록한다. 함께 쓴 책으로 <들꽃, 공단에 피다>와 <나, 조선소 노동자>,<회사가 사라졌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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