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산지역 장애인들을 분노케 한 사건이 있었다. 분노의 시작은 경산의 A장애인단체에서 공익캠페인이라며 내건 현수막 문구였다.‘무단횡단 장애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장애인을 부정적인 존재로 비유한 이 문구에 많은 당사자가 분노했고, 차별 표현이라고 항의했다. 결국, 항의한 그날 현수막은 즉시 철거되었다. A 단체의 대표도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했다.물론, A 단체의 취지처럼 무단횡단의 위험성을 알리고자 하는 의도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는 나도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다.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여
체감온도가 40도에 육박하는 올해 들어 가장 무더운 6월 8일. 오후 2시가 가까워져 오자 경북지역 시민사회 노동단체 활동가들이 삼삼오오 구미 공단에 있는 금오공고 앞에 모여들었다.포항과 안동, 경주에서 이곳 구미로 한달음에 달려온 그들은 지난 4월 8일 신라공고 이준서 학생을 죽게 한 문제투성이 기능경기대회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버젓이 열린 사실에 분노했다. 대회는 6월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열릴 예정이라고 했다.얄궂게도 준서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딱 두 달이 된 날, 일말의 양심도 고민도 없는 경북교육청은 대회를 강행했다
장애인 어머니가 성인 장애인 자녀와 ‘동반 자살’을 했다. 일부 시민들은 “돌봄 고통을 이해는 하지만 장애인 자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겠냐”며 부모의 무책임함을 비판하는 사람도 꽤 많다. 더 나아가 ‘동반 자살’이라는 단어도 타당한 것이 아니라며 살해라고 했다. “제주 이어 광주서도 발달장애인 가족 ‘극단적 선택’ 왜?” , 2020.06.06.정신건강 영역에서 사회정의는 법적인 개념보다 훨씬 포괄적이다. 사회정의 상담에서는 사회문제로 발생되는 사람들의 고민을 접할 때 인권과 사회정의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다.우리가 아무
스마트폰 화면을 스치는 손끝의 섬찟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눈이 ‘콘텐츠’를 바삐 좇는 동안 손가락은 부지불식간에 삭제되어 버린 모양이다. 불쑥 다시 제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 손가락은 이런 것을 만지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라고 항변하듯 때때로 이물감을 전달한다. 손가락들은 코로나19로 촉발된 ‘언택트’ 시대가 찬양하고 갈구하는 디지털에 대해 생각한다. 한 러시아 언론은 가구 인터넷 접속률이 99.5%에 이르는 한국을 코로나19 이후에 살아남을 유일한 나라로 꼽았다고 한다. 손가락(digit)을 잃어버린 백 퍼센트
그는 일흔을 넘긴 할머니였다.이른 봄날 산에 나물을 찾아 나선 것일까. 봄나물을 캐다 말고 춤을 추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마을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중일까.사진은 아무 말이 없다. 그 안에는 꽃도 피어 있고, 숲도 우거져 있으나, 이곳이 어딘지 또 언제인지 저 할머니는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하물며 사진의 바깥을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늘 사진을 보고, 보여준다. 사진을 붙잡고 말을 하고 있다.사진 속 할머니는 이제 팔순의 나이에 이르렀다. 그는 파킨슨병으로
지난 5월 6일 ‘울진군 기성면 골재 채취 운송료 및 인건비 체불’ 사건이 현대 HCN 방송에 보도되었다. 방송에 의하면 업체 대표가 잠적하면서 덤프트럭과 중장비 차주 50여 명이 5억 5천만 원에 달하는 운송비와 인건비를 받지 못했으며, 업주의 과도한 불법채취가 있었으나 울진군의 관리 감독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인터넷 검색을 하면 골재 불법 채취로 인한 민원에 대한 기사들이 확인된다. 전국적으로 드러나는 실태이고, 오래도록 근절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골재(해상, 육상, 하천)는 우리들의 중요한 자연자산이고 유한한 자원이다
매년 세계노동절에 참여했다. 해마다 꾸려져 두 달여간 가열하게 투쟁하는 4·20 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이 이날 장애인 노동권 쟁취 결의대회를 하고 해단식을 진행한다. 그동안 노동절 집회에 참여하면서 뭔가 답답함을 느꼈다.나도 노동자인데 이 사회는 날 왜 노동자로 인정해 주지 않지? 왜 만국의 노동절인데 장애인 노동자들은 연대의 틀 속에서만 행동해야 하는 거지? 여러 생각 끝에 ‘장애인도 노동자’라고 외치며 주체적으로 참여할 길은 노동조합뿐이란 결론에 이르렀다. 장애인노동조합은 2년간 준비를 거쳐 지난해 11월 13일 전태일 열사
지난 4월 중순, 죽변면을 가로지르는 도로 옆 가로수 왕벚나무들이 그루터기만 남은 채 처참하게 발견되었다. 밤새 안녕이라고, 나무들은 그렇게 무참히 잘려나갔다. 아침에 일어나 잘려나간 나무를 바라보며 몇몇은 눈물을 글썽였고 몇은 살아있는 나무를 쉽게 죽이는 행정을 원망하기도 했다. 나무를 베어낸 쪽도 미안했던지, 사람들 안전을 위해서인지 몰라도 주황색 칼라콘을 덮어 놓았다.죽변면은 2001년 플라타너스를 베어내고 왕벚나무를 심었다. 가로수도 유행을 타서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변경된다. 당시는 플라타너스 꽃가루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고
2017년 봄, 차가운 바다 아래 갇혀있던 세월호가 뭍으로 올라왔다. 목포신항에 누워있는 거대한 고래 같던 그것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동백을 한참 바라보던 고양이를 만났다. 바라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기억이란 새로운 시간을 열려는 노력이라고 하는데,인간의 기억이란 얼마나 가벼운지. 사진은 또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반갑습니다.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글로 전해 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함께 가치 있는 세상을 위한 목소리를 멈추지 않는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세월호 참사 피해 당사자이며 생존자인 김성묵입니다.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뿐만이 아닌 국민 모두가 소중한 생명이 죽어 가는 모습을, 죽임당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고 들으며 그곳에 있었습니다. 국민의 죽음 앞에 자신들의 안녕을 걱정하며 보고 체계와 책임회피를 핑계로 구조할 수 있는 시간을 허비하고 지켜만 보고 있던 해경과 구조세력들…. 우리 모두는 죄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북의 평범한 역사 교사입니다. 예기치 않은 전 세계적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전무후무한 온라인 개학을 하고, 하루하루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기도 벅찬 이 시기에 아무 인연도 없는 남의 학교 교문 앞에 와 있는 것이 참 서글픕니다. 이 시점에 기억에도 가물가물한 국정 역사 교과서를 다시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2018년 중·고등학교 현장에 차례로 2015개정교육과정이 도입되었습니다. 대부분의 교과가 새로운 교육과정에 들어가 새로운 교과서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사 교과는 예외였습니다. 2019
“증인, 선서하세요.”“선서. 양심에 따라 숨기거나 보태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말하며, 만일 거짓말을 하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작년 여름, 포항 법원 제1호 법정. 나는 형사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내 왼편에는 검사가, 오른편 피고인석에는 한동대 학생처장이 앉아 있었다. 죄명은 명예훼손. 학생처장이 나의 실명과 함께 나에 대한 모욕적인 발언이 담긴 문자를 교회에 퍼뜨렸기 때문이다. 새삼 피고인석에 “국민”으로서 앉아 있는 학생처장의 모습이 묘하게 다가왔다. 2년 전, “국민으로서 얘기하려면 학교 밖에서 해!”라고
“재난은 밑에서부터 차오른다.”한때 즐겨 듣던 팟캐스트에서 재난 관련 이야기를 하던 출연자가 했던 말이다. 재난은 대체로 그 사회 내에서 힘없는 계층이 가장 먼저 그리고 더 큰 고통을 경험한다. 1348년, 흑사병의 공포 역시 종교적 광기와 함께 혐오와 배제로 나타났다. 이는 유대인과 같은 이민자나 빈민들처럼 사회적 소수자나 약자들을 향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런 혐오를 조장하고 이용했다. 유대인 혐오, 인종적 차원과 경제적 차원탈무드에서는 신을 만나는 행위는 신성한 것이기에 평소에 자주 손을 씻는 등 청결한 생활 습관을 강조한
‘일상생활의 끔찍함’을 새삼스레 확인하는 요즘이다. 전염병이 가져다준 새로운 일상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리워 마지않는 바로 그 일상 말이다. 쏟아지는 위기와 재난의 이야기들을 헤치고 살금살금 길을 나선 눈동자는 이내 어리둥절해진다. 너무 많은 것이 바뀌고 너무 많은 것을 빼앗겨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어서. 도로와 자동차, 건물들은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고 영영 고정되어 버린 것 같은 고체적 풍경에 숨이 막힌다. 물론 견고한 파이프 속을 부지런히 흘러 다니던 부동액의 유속이 오프라인 세계에 한해 느
3월 9일 코호트 격리 시작‘감염병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사회로부터 격리를 당했다. 집단 감염의 우려가 높다는 이유였다. 직원들은 “우리의 인권은 없냐”, “이렇게 강제적으로 하라면 해야 하느냐”, “가족들은 어떻게 하느냐”라며 처음에는 거부반응을 보였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우리 원의 경우에는 선택권이 주어졌다. 2주간 코호트 격리에 참여할 것인지, 가정에 격리되어 있을 것인지. 육아를 책임져야 하는 3명의 교사가 코호트에 참여하지 않았다.저녁 잠자리에 누우니, 거주인 000 씨가 입소할 때가
안녕하세요.당신의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해서 여기에 편지를 씁니다.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 피해 소식으로 마음 졸이는 매일입니다. 부디 당신도 무탈한 일상을 보내셨길 바랍니다.굳이 이곳에 편지를 쓰는 이유는, 당신이 뉴스풀 기사를 읽고 제가 신천지 교인인지 수소문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식을 접하고, 요즘 코로나19 만큼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혐오’라는 이름의 바이러스입니다.포털사이트에 ‘혐오’라고 검색해봤습니다. 사전적 정의는 ‘싫어하고 미워함’입니다. 싫어할 ‘
중세 유럽에서는 고대 그리스와 이슬람 의학에 근간하여 모든 질병의 근원을 ‘체액의 불균형’으로 보았다. 그래서 치료는 이 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었다. 때문에 의대 교육은 대부분 내과에 치중되었고, 의사 중에서도 이론의라고도 불리는 내과의(fisici)가 가장 소수의 상위 집단이었다.이 외에 도제식으로 양성된 외과의(chirurghi)와 독학과 개인 경험으로 의학을 습득한 임상의(empirici)도 있었다. 임상의는 무면허 의사 취급도 당했지만 골절이나 탈장, 외상 등 특정 분야에 상당한 전문성을 보유한 사람도 있었다. 1348년
내 딸은 중증장애인이다.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위장에 작은 관을 심어 영양을 공급받는 위루관(Gastrostomy tube)을 갖고 있다. 위루관은 내부 장기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서 균 감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그러나 튜브가 고착 된 지 20년이 넘어서 피부는 단단하게 굳었고, 소독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원래 피부처럼 되었다. 병원 의사도 굳이 소독할 필요가 없고 물로 닦아내면 된다고 했다. 20년 동안 간병하며 익숙한 나도 의사 말을 듣고 소독을 안 했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빨갛게 되고 염증이 생겼다
0_ 2001. 9. 11. ~ 2020. 2. 29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에 의해 납치된 민간 여객기를 이용한 자살테러로 세계무역센터와 미 국방성, 속칭 “펜타곤” 공격이 가해졌다. 훗날 “테러와의 전쟁”으로 명명되어 현재까지 끝 가는 줄 모르고 진행되고 있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전쟁에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된 계기였던 진주만 습격 이후 최초이자, 북미 대륙 심장부를 공격당한 것으로는 독립 초기 영-미 전쟁 이후 최초인 이 사건에 유일 초강대국 미국은 격분했다.알 카에다는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을 석
1347년 10월,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시작된 흑사병은 1348년 3월에 피렌체를 덮쳤다. 흑사병은 순식간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사회 전 분야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는 르네상스 촉발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관련 기사: 흑사병이 종교 권력에 몰고온 파국 ). 오스트리아의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에곤 파리델(Egon Friedell, 1878-1938)는 저서 에서 흑사병이 터진 1348년을 ‘근대 인간을 수태한 해’로 평가했다.사실 피렌체에서만 해도 흑사병은 1348년부터 1495년까지 여러 번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