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서 잊혀진 후쿠시마 9주기

 

내 딸은 중증장애인이다. 입으로 음식을 먹을 수 없어서 위장에 작은 관을 심어 영양을 공급받는 위루관(Gastrostomy tube)을 갖고 있다. 위루관은 내부 장기가 외부와 연결되어 있어서 균 감염이 생기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튜브가 고착 된 지 20년이 넘어서 피부는 단단하게 굳었고, 소독을 안 해도 될 정도로 원래 피부처럼 되었다. 병원 의사도 굳이 소독할 필요가 없고 물로 닦아내면 된다고 했다. 20년 동안 간병하며 익숙한 나도 의사 말을 듣고 소독을 안 했더니, 순식간에 상처가 빨갛게 되고 염증이 생겼다.

그래서 다시 매일 소독을 하고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늦게 발견했으면 살을 도려내야 할 정도로 큰 상처가 될 뻔했고, 우리 딸은 큰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분명히 의사는 더는 소독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익숙한 것도 철저히 관리하고 살펴야 함을 다시 깨닫게 된 계기였다.

지난 3월 11일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9주기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파는 ‘쓰나미’라는 강력한 자연재해 앞에 인간과 과학기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를 경험하게 한 사건이다. 최근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바다에 방출하겠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가짜뉴스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이는 아주 큰 충격이다.

코로나19는 중요이슈를 모두 잊게 만든다. 3월 11일 WHO의 세계대유행(판데믹) 선언으로 우리는 더 움츠러들고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활동을 위해 자기검열 하면서 조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니 후쿠시마 사건은 잊히기 충분하다. 그러다 지역 언론 ‘울진투데이’의 <여전히 생생하게 진행 중인 후쿠시마 원전사고 그 후…> 기사를 읽게 되었다. 후쿠시마 9주기를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상황에서 지역 언론에서 다루어 준 기사는 상당히 의미 있고, 지역민이 놓치면 안 될 내용이었다.

우리는 재난에 얼마나 취약한지 경험하면서 말로만 안전을 외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후쿠시마 그랬고, 세월호 침몰이 그러하다. 앞서 메르스, 사스 같은 보건의료 재난을 겪으면서도 형식적인 조치를 하고 두 번 세 번 악순환을 반복한다.

울진은 현재 6개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2기는 건설 중이다. 사용 후 핵 원료저장도 상당하다. 위의 기사를 쓴 기자의 말처럼,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안전하게 관리된다고 해도 “원전의 가동 운전과 관련해 지루하고 같은 일의 반복이더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는 우리의 삶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한울원전 홍보전시관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기술적인 면과 안전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후쿠시마 발전소와 다르게 설계되어 안전하다고 했고, 콘크리트 방호벽도 상당히 믿을 수 있다고 이야기 들었다. 

나는 원전에 대해 잘 모르는 평범한 주민인데, 우연히 방사능 반감기에 대해 뉴스에서 보도하는 것을 보았고, 핵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수십억 년에 이르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감기는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는 것이니 실제 사고가 한 번이라도 발생한다면 아주 위험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우리나라 원전 기술과 운영이 향상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민 관점에서 원전의 발표와 정부가 책임지고 관리를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같은 재난을 겪으면서 안전 대책이 제대로 작동될지에 대한 의문과 걱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울진군청 홈페이지 올라온 2020년 울진군예산
△ 2020년 울진군 예산. 울진군청 홈페이지 화면 캡쳐.
△ 2020년 울진군 예산. 울진군청 홈페이지 화면 캡쳐.

2020년 울진군 예산에서 그 어디에도 원전 안전과 관련한 예산은 없다. 안전 방재대책을 세우기 위한 법적 근거는 넘쳐나지만, 실제 수립된 예산이 없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예산이 수립되어도 그것을 지적하고 견제할 의회는 책임을 회피하고, 이를 날카롭게 비판해야 할 시민단체도 없다. 안전 대피와 방재 방법, 방역용품은 어디서 배부받는지에 대한 매뉴얼을 들어본 적도 없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미래세대를 위해 지금 보존해야 할 것과 변혁해야 할 것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울진의 환경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 변혁해야 한다. 기존처럼 예산을 수립하고 중앙정부의 지침만 따르면 곤란하다. 몸에 익은 ‘습’은 바꾸기 어렵다.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 우리는 변해야 하고, 안전에 대해선 철저히 준비하고 대처하도록 해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민간영역에 던져두었던 보건의료정책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예측한다. 공공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군가로부터 “핵발전 사고로 죽는 것보다 기후환경위기로 먼저 죽는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들었다.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인가? 원전사고는 차원이 다른 문제를 발생시키기에, 지금 원전과 관련한 대응체계를 한 번 더 짚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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