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이주대책위 주민들, '후쿠시마 8주기' 부산 사진전 관람
대구에서도 4월 28일까지 열려

 

2017년 포항지진이 ‘지열발전소에 의한 인재’라는 정부 조사연구단의 발표가 있었던 20일 오후, 부산고등법원 406호 법정에서 고리원전 방사선 피해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 13번째 공판이 열렸다(일명 ‘균도네 소송’. 2014년 재판부가 원전 인근 지역의 갑상선암 피해를 인정, 1심에서 승소). 환경방사능 평가자료에 대해 원고와 한수원의 입장을 확인하고, 선고 전 마지막 변론 날짜를 5월 8일로 확정했다. 재판은 시작한지 8분여 만에 끝났다.

경주 양남에서 재판을 방청하러 왔던 월성원전인접주민이주대책위(이하 이주대책위) 주민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판이 금방 끝났다’고 하니, “3분 만에 끝난 적도 있었다”며 이주대책위 황분희 부위원장이 말했다. ‘균도네 소송’이 시작된 이후 부산, 경주, 울진, 영광 등 4개 핵발전소 인접 지역 주민 618명이 한수원을 상대로 갑상선암 피해자 공동소송을 제기했고 황분희 부위원장도 갑상선암 발병으로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법원을 나와서 이주대책위 주민과 활동가들은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 사진전 <후쿠시마의 7년 존엄의 기록과 기억 그리고 부산>이 열리는 부산시민공원 갤러리로 향했다. 부산시민공원은 10여 년 전 미국으로부터 반환받은 캠프 하야리야 부지 터에 조성되어 2014년 개원했다.

 

▲ '2016년 4월 이타테무라'. 벚꽃 아래 오염토를 담은 포대가 쌓여있다.

갤러리에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의 시간과 공간, 사람들의 삶을 기록한 '도요다 나오미' 작가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있었다. 도요다 나오미 작가와 함께 이번 사진전에 참여한 장영식 작가의 사진 설명이 이어졌다.

만개한 벚꽃과 푸른 숲 아래에 ‘112’, ‘120’, ‘13’ 숫자가 적힌 검정 봉투 더미가 보인다. 후쿠시마에서 하얀 트럭은 ‘백조의 트럭’이라 부른다. 방사능 오염토를 실은 하얀 트럭이 어디론가 사라진다. 오염토 포대가 사라진 자리에 벚나무를 심는다. 

후쿠시마 핵사고 지역에서 40㎞ 떨어진 이타테무라. 젊은이들이 ‘우리 마을을 녹색 마을로 만들겠다’는 희망을 품고 유기농업을 하러 귀농하던 마을이었다. 청년들은 아스파라거스 같은 특수작물을 재배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핵사고가 나면서 귀농했던 청년들은 모두 흩어지고, 빚더미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도 있었다고 한다. 핵사고 전 주민 6천300명이 살던 이타테무라에 개당 1톤 무게의 방사능 오염토 230만 포대가 쌓였다. 그 위로 녹색 비닐이 덮였다.  

 

▲ '방사능 오염토 옆에서 진행되는 제염 현장 노동자 조례'. 전시 사진 설명자료

"작업을 시작할 때 마스크와 장갑을 지급 받았다. 수술용 마스크와 흔한 고무장갑이었다. 그 밖에는 모두 우리 자신이 준비해야 했다. 숙소를 떠나 대기소로 가서 각자의 마스크와 헬멧을 쓴다. 신발도 각자가 준비한 것을 신어야 했다. 우리가 걸치는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옷이었다."

- 후쿠시마 원전 노동자 '이케다 미노루'의 증언, 그린피스 보고서(2019. 3)

핵사고 이후 주민들이 떠나간 마을에서 ‘제초, 청소, 지붕과 벽 닦기, 논밭 표면 흙 제거’ 등 제염 작업을 하는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은 방사선 피폭에 그대로 노출돼 있다. 이케다 씨의 증언에서 드러나듯 노동자의 안전과 노동권은 전혀 지켜지지 않는다. 노동자들 중에는 동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일본의 실업자, 노숙인들도 있다. 기능실습생으로 일본에 온 베트남 노동자가 제염 작업 현장이란 사실을 모르고 일하다 뒤늦게 알게 되어 항의한 사건도 있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는 안전하다’며 피난 지시 명령을 해제하고 피난민의 귀향을 통보하고 있지만, 방사능에 오염되어 폐허로 바뀐 고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아이들이 ‘두붓집’이라 부른다는 ‘응급 가설주택’이 피난민들에게는 새로운 정착지가 된 셈이다. 2018년 유엔 특별보고관은 ‘일본 정부가 방사선 피폭 허용치를 20배나 높게’ 조정한 점을 비판하며 “어린이와 여성 등 피난민들을 후쿠시마로 복귀시키는 것을 중단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 부산에서 열린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 사진전

사진전 관람을 마치고 황분희 부위원장은 “끔찍하다”고 말했다. 3년 전, 당시 5세이던 황분희 부위원장의 손주 몸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었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피폭은 일상이다. 그는 핵사고가 나면 인간의 힘으로는 복구가 불가능한데도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는 정부를 규탄했다. 

신용화 이주대책위 사무국장은 “사진 하나하나가 남 일 같지 않고, 빨리 마을을 벗어나고 싶다”며 “후쿠시마 핵사고로 피난을 나와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재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많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100년 동안 군사기지였다는 시민공원 한쪽에 핀 팬지꽃과 튤립을 보고 사람들의 얼굴이 잠시 밝아졌다. 이날 언론사들은 포항지진 이후 흥해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지진 피해 이재민 임시구호소 모습을 앞다퉈 보도했고, ‘두붓집’ 같은 텐트의 행렬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후쿠시마 핵사고 8주기 사진전은 3월 24일 일요일까지 부산시민공원 갤러리2에서 열린다. 대구에서는 지난 12일부터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주제로한 8년 간의 기록>이란 이름으로 남구의 ‘아트 스페이스 루모스’(http://www.artspacelumos.com/about/contact)에서 4월 28일 일요일까지 전시한다. 대구 전시 관람문의 ☎ 053-766-3570. 입장료 무료.

 

[작가 소개] 도요다 나오미 Toyoda Naomi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아프리카 등 분쟁 지역에서 포토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원전 연료 제작시 생기는 열화우라늄으로 만든 포탄으로 인한 민간인의 피해를 목격하면서 핵무기와 핵발전에 주목하게 되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사고 직후 가장 먼저 현장을 취재했으며, 이후 지금까지 후쿠시마 현장의 목소리를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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