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위기와 근시안 해법의 파괴적 앙상블 앞에서나라는 부강한데 시민은 살기 어려운 나라가 되어간다. 통계 지표상으론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니,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날로 높아진다니 등등 연말연시마다 미디어에선 호들갑을 떨어댄다. 하지만 정작 이를 보는 시민들의 표정은 냉소 그 자체다. 온갖 실적 근거를 보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달리는 게 맞다. 온라인 곳곳에선 평균치가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출처 불명의 수치 기준이 넘쳐난다. 하지만 정작 실제 현실에서 본인 포함 주변에서 평균치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대체 온라인의 평균소득
‘수신료의 가치’는 해야 할 일 하는 것으로 증명된다2월 7일 밤, KBS 특별대담 가 90분 동안 방영되었다. 2024년 새해 벽두에 별도의 기자회견이나 간담회를 진행하지 않은 대통령의 공개 인터뷰 특집이라 그 의의가 절대 가볍지 않은 자리였다. 하지만 방영 전부터 기대보다는 논란만 가득했다. 녹화로 진행한다고 공표했기에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논란들에 대해 과연 얼마나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선 것이다. 게다가 현 정부 들어서 급격하게 친정부여당 성향으로 수뇌부가 교체된 KBS가 제대로 검증에 나설 수 없을
영화제 현장에서 사라진 감독의 이야기, 2023년 10월 9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현장에서 작은 사건이 터졌다. GV(Guest Visit,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하기로 한 감독이 사라진 것이다. 사전에 전혀 공지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영화 상영 후 부대행사를 기다렸던 이들에겐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무대에 등장해야 할 외국인 감독은 끝내 등장하지 않았고, 행사 진행을 맡을 예정이던 영화제 프로그래머만이 등장해 자초지종을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그리고 혼란은 가라앉았다. 프로그래머가 마이크를 통해 전달한 사정이 너
매일 아침, 마당을 드나드는 동네 길고양이들에게 줄 사료와 물을 준비해둔다. 그런데 어떤 날에는 얌전히 깨끗하게 삭삭 비우고 가는데 다른 날에는 온 사방에 사료가 흩뿌려지다시피 하곤 했다. 미관상 좋지도 않고 덥고 습한 날엔 사료가 상하기에 십상이니 신경이 은근 많이 쓰이는 일이었다. 범인이 대체 누군지 잡히기만 해라 벼르게 되었다.범인은 얼마 후 밝혀졌다. 전선에 잔뜩 앉아 있던 동네 새떼였다. 참새는 아예 그릇에 퍼질러 앉아 먹었고 좀 더 덩치가 큰 비둘기나 까치, 까마귀들이 드물지 않게 출몰했다. 상대적으로 체구가 큰 새들이
5월이 지나갔다. 한국현대사에서 1980년 이후로 5월은 특별하다. 근래에는 4.16이 그러했던 것처럼, 개념적 의미 자체로는 온전히 독해하기 힘든 정체성이 더해졌다. 물론 이 또한 세대가 몇 번 더 바뀌면 희미해질 테다. 영속적인 건 존재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평범한 개인이 측량할 수 없는 상당한 물리적 시간이 필요할 테다. 1980년 5월은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억될까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낳게 마련인 문화적인 기억이 흐릿해진다는 건 전제된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작동하는 과정이다.첫 번째 경우.해당 사건을
◆ 확장을 거듭하며 다시 소환되는 설국열차의 세계 첫 시작은 만화였다. 다만 청소년 대상의 ‘코믹스’가 아닌, 성인용 그림 소설 형태인 ‘그래픽 노블’에 가까운 형태다. 1970년대부터 이야기를 구상했던 자크 로브는 1984년, 그림을 담당한 장 마르크 로셰트와 함께 1권 를 출간한다. 이후 자크 로브가 사망하자 장 마리 로셰트는 뱅자맹 르그랑을 영입해 2권 와 3권 을 각각 1999년과 2000년에 선보인다. 전 3권으로 완성된 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고, 2004년 세미콜론 출판
아주 특별한 ‘혼인식’의 기억 2022년 9월 중순, 온라인 청첩장이 왔다. 원래도 그랬지만 코로나19로 인해 핑계 대기 워낙 좋아진 이후로는 거의 모든 경조사를 가지 않던 중이었다. 또 누가 눈치도 없이 귀찮게 하는 거지? 그런 짜증 섞인 반응과 함께 일단 무슨 내용인지 들여다봤다. 9월 24일 혼인식 일정을 전하는 주인공들은 익숙한 이름과 얼굴이었다. 박배일 감독(, , , 등)과 그와 함께 얼마 전부터 갖은 닭살 행각을 더불어 보여줬던 황남임 님이다. 그들은 통상적인 예식장 대신에
◆ 세계 최고 흥행작 연대기, ‘영화는 영화일 뿐’임을 거부하다2009년 개봉해 현재까지 역대 영화 흥행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 그 속편 이 13년 만에 등장해 전 세계 겨울 극장가를 석권하는 중이다. 전편의 아성을 넘보긴 어려울지 몰라도 개봉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역대 흥행 10위권에 안착하며 코로나19 이후 얼어붙은 극장가를 달군다. 미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가파른 흥행 실적을 선보이며 천만 관객을 넘보고 있다.속편 역시 전편에 이어 영화로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을 확
1_ ‘체념 증후군’, 들어보셨나요? 2003~2005년부터 스웨덴에서 ‘체념 증후군’이란 신종 질환이 보고되기 시작했다. 타국에서도 차츰 유사 사례가 등장하기 시작해 온전히 스웨덴만의 사례는 아니다. 하지만 현재까지는 스웨덴이 독보적으로 많은 질환자를 배출하는 중이다. 이 질환의 특징은 점점 신체활동이 느슨해지다가 완전한 가사상태로 빠진다는 것이다. 즉 ‘코마’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그 자체로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 먹거나 마시는 행위 혹은 배설 활동까지 멈춰버린 셈이라 주변의
1_박제가 되어버린 노회찬을 아시오? 2018년 7월 23일 故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난 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한국 진보정당 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행적을 남긴 고인을 기리며 여러 기념사업과 추모행사가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영상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2021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고인에 대한 전기 다큐멘터리 이 첫선을 보였다. 이후 내부 시사를 거쳐 10월 중순부터 일반에 개봉한 상황이다. 한국사회의 양당 독식 구도 중심 정치 지형에서 제3 정치세력의 특정한 결을 대표하는 상징 중 하나를 차지
일주일에 두 번씩 새벽마다 소성리 마을길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경찰폭력에 부상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소성리 부녀회장님은 반찬이라도 연대를 받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 2016년 9월 30일 소성리로 사드 배치가 결정 나고 그해 가을부터 겨울 그리고 해를 넘기고도 끊임없이 소성리로 연대자들이 들어왔고, 소성리 부녀회장님은 밥을 지었다.처음엔 마을 주민들이 먹을 밥을 했지만, 마을에 모여드는 연대자를 외면할 수 없어서 식사시간이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회관으로 들어와서 반찬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밥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한솥
1. 선거라는 스펙터클을 다큐멘터리로 담아내다 선거를 다룬 국내 다큐멘터리는 그리 많지 않다. 극영화가 상대적으로 활발히 소재로 다루는 것과 비교된다. 극영화의 경우 픽션으로 재구성할 수 있고, 스릴러에 활용하기 좋은 이점으로 상업영화에서 꽤 자주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다큐멘터리 사례로는 촬영감독으로 잘 알려진 박홍열 감독이 오랜 친구의 진보정당 선거운동을 담은 1, 2와, 강의석 감독이 극우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변희재의 선거운동을 동행하며 만든 정도를 떠올릴 수 있겠다. 선
1_‘스파이’란 존재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초기 대표작 에서 “언어의 한계가 곧 세계(관)의 한계”라는 명언을 남겼다. 어떤 존재에 대해 어떤 이름으로 부르느냐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집단 간 전쟁에서 상대국의 정보를 빼내오는 임무는 중시되었고 이를 행하는 이들은 자국에선 애국자이자 영웅으로, 적국에선 간첩이나 스파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정체가 들통 나면 이들이 겪게 될 위험은 어마어마했다. 혈연이나 인맥으로 이어진 의리, 국가에 대한 충성, 성과에 포상으로 주어질 부와 명예에
1_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시’의 거처 입시 준비에 모든 게 맞춰진 한국 제도 교육에서 청소년기에 시를 접한다는 행위는 잘 정리된 문제풀이 해설집을 암기하고 숙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시를 음미하고 작가의 의도를 상상하기보다는 정답지를 찾는 데 집중하기도 시간이 모자라다. 소설 등의 산문은 그나마 답을 구하기 쉬운데 절제와 은유가 기본인 시란 문학 형식은 미지의 세계다. 자연히 대학 진학 후 국문과나 문예창작과가 아니라면 시를 접할 일이 없다. 그렇게 시는 버려진다.시를 쓰는 이를 시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한국의 연재
1. 단편 독립영화를 소개하는 새로운 시도 : 시리즈 독립영화는 여전히 상업영화보다 소개될 기회가 희박하다. 특히 통상적인 극장 개봉에는 맞지 않은 형태인 단편영화는 더욱 그렇다. 그나마 조금 화제가 되거나 우리가 이름은 들어봤을 법한 독립영화들은 대부분 장편영화로 극장에서 작게나마 개봉을 통해 만나볼 기회가 있던 작품들이다.하지만 독립영화의 본령이 기존 상업영화가 소화하지 못하는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실험이라는 점에서 보다 독립영화 정수에 가까운 게 단편영화라고 본다면, 단편 독립영화가 소개될 기회가 없다는 점은
‘이것은 아주 귀한 거니까 잘 간수해라’라는 시아버지의 대사를 할 때마다, 아이들 손바닥에 뭔가 주는 시늉을 합니다.빈손인 줄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 손을 또 바라봐요.저도 괜히 진짜 귀한 것 전하듯이 진지하게 아이들 손바닥을 한 손으로 받치면서, 다른 손 엄지 검지를 모아 집게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해봅니다.귀하고 좋은 것을 아이들에게 늘 주고픈 마음입니다….그런데 자꾸 잔소리만 주는 현실 ㅜㅜ 그래서, 막내며느리는 뭐라고 했게요? “막내며느리는 말이야, 던지지도 않고 먹지도 않고 속으로 이렇게 생각을 해.‘이것을 주실 때는 무슨
1_ 최창환 감독의 제주도 정착 후 첫 ‘영화’전작이자 감독의 첫 장편 (2018)까지 대구를 배경으로 소외된 자들의 노동에 관한 일련의 작업을 해 온 최창환 감독은 제주로 어느 날 훌쩍 떠났다. 김녕 바닷가에서 생계를 위한 부업을 이것저것 하며, 여전히 대구와 제주를 오가는 작품 활동을 한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대표로서 지역 독립영화 “씬”을 챙기며 활동 폭을 넓혀가는 중이다.태어나고 자란 익숙한 지역을 떠나 새롭게 정착한 제주가 감독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는 최창환 감독의 영화를 주목한 이들에
2014년 이후 여섯 번째 사월이 돌아왔다. 하필 그 전날이 21대 국회의원 선거 투표일이다. 많은 이들이 이제 4.16은 역사의 영역으로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필자 또한 그랬다. 이 처음으로 공개되던 2019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를 볼 때도 ‘의무방어전’을 하는 심정이었다. 흥미로운 몇몇 장면들, 아는 얼굴 찾아보기, 궁금했던 이들의 후일담 같은 데 반응하면서 영화를 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기준으로) 5년이 지났으니 슬슬 이런 평가와 회고를 중심으로 작품이 나올 때가 되었지, 그리고 내년 봄에
한동대 징계무효 확인소송의 마지막 변론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함께 사는 식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재판 끝나서 기차 타러 포항역 가고 있어요.” 오늘 재판이 어땠는지, 상대가 어떤 변론을 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이상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반박을 했는지, 그럼에도 무엇이 우려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통화가 끝나자, 묵묵히 운전을 하던 기사님이 기다렸다는 듯 말을 꺼냈다. “법, 뭐 이런 일 하시나 봐요.” “아, 제가 일하는 건 아니고요. 다니던 대학에서 2년 전에 부당징계를 당해서 징계
4월이다올해도 국가가 불법적으로 사드를 임시배치한 성주 기지에 공사가 예정되어있다. 공사는 4월이라고 이야기가 돌았지만, 정확히 언제가 될지는 알 수 없다. 봄이다. 겨울의 매서운 추위가 가셨지만, ‘NO THAAD’가 적힌 롱패딩은 벗지 못했다. 아침과 저녁으로 쌀쌀한 기온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뒤늦은 꽃샘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나무는 싹을 틔웠고, 벚꽃을 피웠다. 성주 사드 기지 철조망을 사이에 둔 채로 산허리에 진달래가 흐드러졌다.초록빛이 감도는 겨자색 생강나무꽃이 예뻐서 찻주전자 속에 넣어두겠다며 나뭇가지를 꺾었다. 둥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