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이 ‘고도화’되면 어떻게 달라질까? 세련된 옷을 걸친 마네킹이 쇼윈도에서 웃고 있는 대형쇼핑몰, 편의성이 강조된 그곳은 놀 거리와 볼거리가 있는 위락시설까지 갖췄다. 휘황찬란한 쇼핑몰은 호텔로 곧바로 연결된다. 공단이 확 달라진다. 공장은 사라지고 거대한 유통단지가 들어섰다. 그러나 공단에서 일했던 제조업 노동자들은 모두 일자리를 빼앗겼다. 복합쇼핑몰이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잡아먹고 말았다. 마치 침략자들에 의해 땅과 삶을 빼앗긴 인디언 부족처럼! 

한때 대한민국 경제를 떠받쳤던 제조업 공단은 구조고도화란 이름의 괴물에 의해 죽어가고 있다. 공단은 부동산투기꾼과 임대업자, 유통자본의 번식처로 변질됐다. 추측과 상상이 아니다. 구로디지털밸리가 그랬다. <구조고도화>는 노후한 공단을 랜드마크로 탈바꿈하고 싶은 지자체의 조급증이 자본의 탐욕과 만나 노동자, 중소상인의 생계를 수탈하는 일이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디지털밸리)는 구조고도화사업의 모범사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십 년 이상 일한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쫓겨나는 위기를 불러왔을 뿐이다. 부동산 땅값만 올렸을 뿐이다. 

KEC가 또, 구조고도화 추진을 발표했다.

 

△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들이 구조고도화 반대 선전전을 하고 있다. 

 

구조고도화가 ‘재앙’인 이유

공장 폐업이 기정사실화 된다 

KEC는 공장부지 33만578제곱미터(10만 평) 중 16만5천289제곱미터(5만 평)에 백화점과 복합환승터미널, 주차장 등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멀쩡히 가동 중인 공장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그 공장은 폐업할 수밖에 없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추진한 역대 구조고도화 민간대행사업 중 KEC처럼 가동 중인 공장부지에 무분별하게 추진된 전례가 없다. 회사는 2013년 구조고도화 대상 부지에 있던 어셈블리 공장을 폐쇄했다. 폐업을 염두에 둔 행보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제품 생산 불가 

KEC가 생산하는 비메모리 반도체 제품은 진동과 먼지에 예민하다. KEC는 50년 된 기업이다. 공장 내 도로 곳곳에 실금이 나 있어 평상시에도 차량 진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공장의 절반에 지하 2층, 지상 10층짜리 건물을 지으면 결국 반도체 제품 생산은 불가능하다.

시민안전 위협 

반도체 공장에는 불산 등 유해성 위험 물질이 많다. 1공장 옆 수소가스는 폭발 시 반경 2Km가 날아간다. 만약 이 땅에 대규모 건설공사를 한다면 치명적 살상 무기를 옆에 두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누구의 안전도 보장할 수 없다. 그런 위험한 공장 옆에 주차장과 백화점을 짓는다는 건 시민의 안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미친 짓이다.

 

신규투자 중단, 외주 확대 

KEC는 2011년~14년까지 총 4번에 걸쳐 구조고도화 사업자 선정에 신청했다 탈락했다. 2009년을 끝으로 공장은 신규투자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대신 많은 물량이 외주화됐다. 작년에는 중국의 3대 외주생산 전문업체인 CSMC와 IGBT 외주계약을 체결했다. 국내거점인 KEC 구미공장은 서서히 축소되고 태국공장이 핵심거점이 되고 있다.

“정부지원금 먹튀” 우려 

KEC는 올 4월 산업통상자원부가 주관하는 SiC 전력반도체 연구개발사업자로 선정됐다. 금속노조 KEC지회는 SiC 소자를 구미공장에서 생산해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정부지원금을 받아 국책사업자로 선정됐음에도 구미공장에는 어떤 설비도 깔리지 않고 있다. 만약 공장부지의 절반에 복합쇼핑몰이 들어서면 이 제품 역시 외주생산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정부지원금으로 먹튀하는 대국민 사기극이 벌어질지 모른다. 

구미 1공단의 공동화 

KEC 구조고도화는 한 공장의 폐업에 그치지 않는다. 구로디지털밸리에서 확인했듯이 공단 전체가 유통 단지화된다. 멀쩡히 가동 중인 공장이 상업용지로 바뀌어 떼돈을 버는데 어떤 제조업 사장이 공장을 계속하고 싶겠는가? KEC 구조고도화는 구미 1공단 공동화를 부르는 대재앙이다. 

 

KEC는 지난 8월 19일 사내에서 “구조고도화 추진위원회 발족식과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4번이나 탈락하고도 똑같은 사업계획을 다시 추진하는 오기와 배짱이 대단하다. 폐업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일자리 대책은 전혀 없이 구조고도화 사업을 아무렇지 않게 밀어붙이는 한국산업단지공단이 있기 때문이다. 도시재생, 정주 여건 개선이란 명목으로 구미시가 KEC의 폐업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구조고도화 사업으로 살아난 제조업체가 있으면 알려달라. 한 곳도 없다. 공단 노동자뿐 아니라 중소영세상인 모두의 생존이 달렸다. 구조고도화는 처음부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노동자와 서민의 생존을 위협하는 구조고도화 당장 멈춰라! 

 

 

글 _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수석부지회장 이미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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