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올해 40번째를 맞은 ‘장애인의 날’이다. 유엔(UN)이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지정하고, 이듬해 전두환 정권이 ‘복지 사회 건설’을 주요 과제로 강조하면서 ‘장애인의 날’은 탄생했다. 이후 1991년부터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되었다.

그러나 인권단체들은 ‘장애인의 날’이 현실의 차별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동원한다며 비판해왔다.

이날,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경주에서 시민사회·노동·정당 관계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보여주기식’ 장애인의 날을 규탄하고, 탈시설·자립 생활 권리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420장애인차별철폐경주공동투쟁단(이하 공투단)은 20일 경주시청 앞에서 ‘420장애인차별철폐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기만적인 장애인의 날을 단호히 거부하고, 당당한 권리 쟁취를 위한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을 선언했다.

김종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상임공동대표는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다. 1년에 하루 선심 쓰듯 장애인을 위한다며 기념한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은 집 밖을 나가 이동하기조차 어렵고, 보호라는 명분으로 시설에 격리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김 대표는 “경주의 장애인 시설에서 입소자 2분이 정신병원 강제 입원과 건강 악화로 돌아가셨다. 그러나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규탄했다. 이어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집단 수용정책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경험했다. 경주시는 수용정책이 아닌 탈시설·자립 생활 정책 수립에 적극 나서야한다”고 촉구했다.

 

“경주시는 약속한 장애인시설 전수조사 실시하고, 근본적인 탈시설 정책 추진하라"

최해술 민주노총 경주지부장은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 생색내기, 보여주기를 위한 행정이 아니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할을 하는 행정이 되어야 한다”며, “함께 투쟁하는 것만이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가는 길이다.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같이 싸워나가자”고 당부했다.

기자회견 당일 오전에는 포항시의회 앞에서 ‘장애인 생존권과 활동 지원 서비스 24시간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피켓 시위가 있었다. 시위에 함께한 한종혁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포항에서 장애인 생존권을 요구하는 싸움을 하고 경주시청으로 왔다”며 발언을 시작했다.

한종혁 활동가는 “중증 장애인에게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은 생명이 달린 시급한 문제”라 강조하며, “중증 장애인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포항과 경주지역이 힘을 모아 투쟁해 나가자”라고 연대의 뜻을 밝혔다.

 

△(왼쪽부터) 김종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상임공동대표, 최해술 민주노총 경주지부장, 한종혁 포항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 배예경 경북장애인부모회 회장, 오정욱 경북피플퍼스트위원회 대표

이어서, 배예경 경북장애인부모회 회장은 “오늘 서울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이 장애인 차별 철폐 투쟁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장애인에게 밥 한 그릇 동정하듯이 던져주는 삶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또한 ”시민사회가 수년째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 현안 해결과 탈시설 정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경주시는 인권을 착취한 가해자와 시설에 어떤 행정처분을 해야 하는지, 탈시설 정책을 어떻게 추진해나갈 것인지 얼마나 고민했는가? 경주시는 지역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시민사회와 책임 있게 협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여자들은 “장애인 시설 인권유린 문제는 장애를 이유로 시설에 가두는 수용정책에 있다”며, “경주시가 수용 중심의 장애인 정책을 지역사회 기반의 자립 생활 지원 정책으로 반드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공투단 대표단은 경주시 장애인여성복지과를 방문했다. 경북피플퍼스트위원회 오정욱 대표, 경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준) 김종한·배예경 상임공동대표는 장애인 시설 전수조사 준비상황을 질의하고 조속한 탈시설 정책협의 개최를 요구했다.

김기호 장애인여성복지과장은 “공투단에서 제안한 전수조사 예산안을 올려둔 상태”라며, “조사 예산은 반영될 것으로 전망한다. 예산이 확정되면 협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공투단은 오늘 투쟁 선포식을 시작으로, 경주시의 실질적인 탈시설 정책 실현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공투단 관계자는 “올해 정책요구안으로 ▲범죄 시설 폐쇄와 거주인 탈시설 지원 대책 마련, ▲탈시설·인권단체가 참여하는 경주 시내 장애인 수용시설 전수조사 실시, ▲탈시설·자립생활 지원 종합 계획 수립, ▲긴급재난 취약계층 안전 및 대응대책 마련을 수립했다. 시설 현안과 구체적인 장애인 권리 보장 정책이 제대로 실현될 때까지 경주시를 상대로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 밝혔다.

 

△ 피켓을 든 기자회견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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