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역사 이야기] 회원 수 46만 명‥ ‘애국부인회’가 한 일은?
[근현대 역사 이야기] 회원 수 46만 명‥ ‘애국부인회’가 한 일은?
  • 강철민
  • 승인 2020.11.15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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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율아!


하늘에 솔잎을 던져 놓은 것처럼 잠자리가 수북이 날아다닌다.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비가 내리고 들판의 콩잎들이 노랗다 못해 투명하게 물이 들면 아이들은 메뚜기를 잡았어. 투명한 유리병을 허리춤에 하나씩 차고 저금통에 정성 들여 저금하듯 꼬깃꼬깃 잡아넣었지.

한 병이 꽉 차면 의기양양 집으로 들고 가 어머니께 자랑했어. 참기름에 볶아 소금을 치면 고소하고 맛있는 밥반찬이 되었지. 반찬 하려고 잡기도 했지만 심심해서였어. 손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손에 잡히는 대로 장난을 쳐야 했지.

메뚜기, 방아깨비, 여치, 귀뚜라미, 잠자리, 사마귀…

가을 들판과 하늘에 다니는 모든 게 장난감이었어.

잠자리를 잡아 몸보다 훨씬 큰 눈알을 괜히 손톱으로 툭 눌러 보고, 빨간 꽁지를 뽑아내고 풀 줄기를 꽂아 날려 보기도 했어. 여치와 방아깨비를 싸움 붙이고, 사마귀 배에서 연가시도 뽑아냈지.

그중에 사마귀는 최고로 멋있는 장난감이었어. 쇠 낫 같은 앞발에 미늘이 달려있어 한 번 걸리면 벗어날 수 없었지. 손가락으로 톡톡 눈앞을 자극하면, 휘두르는 앞발에 걸려 고생 꽤나 했어. 특히나 암컷은 교미가 끝난 후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이야기에 어린 나는 충격과 호기심을 느꼈어.

삼촌이 살던 산골 마을 초입에는 형제가 살았어.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늘 날카로운 눈빛을 하고 있었지. 비명처럼 지르는 퇴화한 소리, 과장된 몸짓과 말 대신 주고받는 그들만의 수신호에 마을 아이들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어. 호기심 반 두려움 반, 나는 그 아이들과 친해져서 함께 놀고 싶었지만, 곁을 주지 않아 가까이 갈 수가 없었어.

마치 사마귀처럼 사납고 경계가 심했어.

‘의태’

자신의 모습을 다른 생물과 비슷하게 해서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지킨다는 말이야.

연약한 나비의 날개에 독침이 달린 무서운 말벌의 모양이 그려져 있거나, 나뭇잎처럼 보이는 나방의 날개 같은 것들이지.

형제들은 무서운 사마귀가 아닌, 소외, 멸시, 차별을 피해 자신을 스스로 지켜간 연약한 나비가 아니었을까?

 

일제는 패망이 가까워지면서 발악을 시작했어.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식민지 조선에 대한 수탈은 극에 달했지. 물적, 인적 자원을 말기 전쟁에 총동원했는데 여성들과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었어.

남성들은 전쟁터로 내몰아져 총알받이가 되었고, 남은 이들은 전시에 후방을 책임진다는 이른바 ‘총후보국(銃後報國)’의 역할을 했지.

 

애국부인회 전북 김제군 분회 위촉장.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애국부인회는 1906년 일본에서 설립된 군사 후원단체인데, 말 그대로 부인들이 나서서 ‘황군’을 후원하자는 것이지. 식민지 조선에서는 국권침탈 직후인 1911년 애국부인회 조선본부가 만들어졌고, 해방될 때까지 운영되었어.

1942년에는 회원 수가 무려 46만 명이나 되는 조선 최대 친일 여성 단체로 성장해. 지역 유지들의 부인들과 여론 주도층 여성들을 동원해 활동했는데 주로 군부대 위문 방문, 위문품 제작 및 전달, 위문금 모금, 폐품 수집, 머리털 수집 등의 사업을 진행했어.

 

(왼쪽부터) 애국부인회, 애국자녀단, 대일본국방부인회 어깨띠.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특히 악질적인 것은 어린아이들을 이용해 ‘애국자녀단’이라는 단체를 결성하는 데 앞장선 것이야.

우리가 잘 아는 이화여대 초대 총장 *김활란 또한 1938년 이화여전, 이화보육학생 400명을 동원한 ‘이화 애국자녀단’을 발족시키고 자신이 단장을 맡아 활발한 친일 활동을 했어.

 

대일본국방부인회 김제지부 위촉장. 대구경북근현대연구소 소장 자료.

대일본국방부인회 또한 1934년 결성된 친일단체로 전시 후방 지원 사업에 여성들을 동원한 활동을 전개했어. 애국부인회와 그 이름만 다를 뿐 성격은 똑같은 단체야.

동아일보에 보도된 국방부인회 행사 내용이야. 함께 읽어보자.

 

동아일보 1938년 5월 25일 기사.

국방부인회 회원

실로 팔만 칠천 명 돌파

“작년 칠월 일지사변 발발 이래 총후 반도 부인의 활약은 실로 놀라운 바로써 그중에도 대일본국방부인회의 발전과 활약은 획기적으로 확충 강화되어,

종래 안방 깊이 묻혀 있던 조선부인도 한 가지 국방부인회원으로서 혹은 상이군인의 위문에, 전사자 가족의 조의에, 출동 장병 유가족의 구휼, 부조에 노력하여 제 일선 황군 장병으로 하여금 후고의 우려가 없게 하고 있는데,

최근 조선, 특히 용산본부 관내의 국방부인회 발전 상황을 보면 소화 9년(1934년)에 경성을 중심으로 하여 탄생되어 겨우 수백 명의 불과한 회원은 내선일체가 되어 군부 당국의 힘찬 지도하에 소화 12년(1937년)도 초에는 비약적으로 그 수 삼 만에 달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이렇듯 일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보국’이라는 이름으로 침략전쟁에 조선 민중을 희생시켰어. 그리고 그 이득을 고스란히 친일파들이 독식했지.

일제강점기 사회, 경제, 문화, 정치, 관료, 행정, 교육, 군대, 경찰 등등 모든 부문에 걸쳐 친일했던 인물들이 위정자, 고위 관료, 대학 총장, 군•경의 수장, 법조계 인사가 되어 대한민국에 그대로 이식되었어.

오히려 이러한 친일세력들은 **‘반민특위’ 등의 친일 청산 단체들을 테러하고 해산시켰지. 김구, 여운형 등 민족주의자, 진보적 인사들은 암살당했어. 미군정(美軍政)과 이승만은 친일 세력들을 긁어모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했어.

이후 친일 잔재 세력은 변신을 거듭해, 독재 잔재 세력이 되어 사회 곳곳에 ‘괴물’들을 낳았어.

‘애국부인회’를 보면서 ‘대한민국 엄마부대’가 생각났어. 그들의 뻔뻔한 말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내 딸이 위안부로 끌려가도 일본을 용서하겠다.”

“아베 수상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하루빨리 제대로 된 친일 청산이 필요하다.

 

글 _ 강철민 대구경북근현대역사연구소장

 


* 김활란

1899년 1월 18일 인천 출생으로, 초명(初名)은 기득(己得), 호는 우월(又月), 세례명은 헬렌(Helen)이다.

1941년 2월 조선청년단(朝鮮靑年團)의 참여(參與)를 맡았으며, 4월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이사 및 평의원이 되었다. 그해 8월 임전대책협의회(臨戰對策協議會) 위원을 맡았고, 9월 임전대책협의회가 개칭한 임전대책협력회와 흥아보국단(興亞報國團)을 통합한 조선임전보국단(朝鮮臨戰報國團)의 발기인으로 참여, 10월 결성 때 평의원이 되었다.

1942년 11월에는 조선교화단체연합회의 전위여성격려대에 참여했으며, 1944년 9월 국민동원총진회(國民動員總進會) 이사, 1945년 6월 조선언론보국회 이사, 7월 조선국민의용대 참여위원 등을 맡아 활동했다.

1946년 이화여자대학교 초대총장 취임, 1963년 8월 교육부문의 대한민국장을 수상, 사망 후 대한민국일등수교훈장이 추서되었다.


** 반민특위(반민족행위자 특별조사위원회)

제헌국회는 정부 수립을 앞두고 애국선열의 넋을 위로하고 민족정기를 바로잡기 위해 친일파를 처벌할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헌법에 두었다. 이에 따라 제헌국회는 친일파를 처벌할 특별법 제정에 착수하여 반민족행위처벌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1948년 9월 22일에 공포되었으며,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같은 해 10월 22일에 설치되었다.

반민특위는 설치 목적에 따라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친일 세력과 이승만 대통령의 비협조와 방해로 반민특위의 활동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친일 세력에게 면죄부를 부여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고, 나아가 이들이 한국의 지배세력으로 군림했다. 이 때문에 사회 정의가 무너져 사람들의 가치관이 혼란에 빠졌으며, 사회에 이기주의와 부정부패 등이 횡행하는 토대를 제공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발췌,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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